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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119 고 김남보가 총을 맞았습니다.” 265) 죽암리 석령 유대홍(다-4562)의 둘째형 유대익이 1950년 12월 10일 경 신광면 계천리 실매 친척집에 조문을 다녀오다 신광 경찰고지로 연행되어 1950년 12월 14일 살해되었 다. 유대홍의 아버지 유갑진은 전쟁 직후인 1950년 7월 보도연맹사건으로 나산면 넙태에 서 사망하였다. 이 사건에 관한 유대홍의 진술이다. “조문 갔던 둘째형이 경찰에 연행되었다는 것은 신광 계천리 실매에 살았던 친척과 주민 이 말씀하셔서 알았습니다. 작은형 사망 뒤 큰형도 경찰 쪽 지방폭도의 칼에 찔려 10년 후 사망하였습니다.” 266) 당시 신광 계천리 계월 경찰고지에 있으면서 유대익의 연행사실을 목격하고 사망소식 을 접하였던 이재현의 진술이다. “한청대원들이 저에게 신광면 계천리 경찰고지로 피난을 가면 안전하다고 하여 그곳으 로 피난을 갔습니다. 어느 날 한청대원이 유대익을 연행하여 왔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날 유대익이 저를 보고 울었던 것이 생각납니다. 다음날 한청대원에게 그 사람이 죽었다는 이 야기를 들었는데 장소는 신광면소재지에서 원산리로 가는 길목이었습니다.” 267) 라) 그 외 지역 월천리 어전마을은 북성리에서 손불면 소재지 방향의 통로에 있는 마을이다. 경찰이 처음 진주하였던 1950년 12월 12일이나 군유산작전이 있었던 1951년 2월 19일 이 부근에 서 민간인 살상이 많이 있었다. 월천리 어전마을 전태범(다-10813)의 할아버지 전경복이 마을에 들어온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다. 전태범은 “부모님은 저수마을에 계셨는데 할아버지만 어전마을에 계시다가 사망하셨다”고 하였다. 다음은 신청인 전태범의 진술이다. “할아버지는 경찰이 작전을 나오니 피난을 가셨고 할머니만 집에 계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양지돔’ 뒷산 물이 없는 방죽에 다른 주민들과 함께 몸을 숨기셨는데 경찰의 총을 맞았습니 다. 산 속에 있는 방죽에 모여 있으니까 경찰이 반란군으로 의심하여 죽였던 것입니다.” 268) 265) 참고인 유대홍 진술조서(2009.5.28.) 266) 신청인 유대홍 진술조서(2008.4.24.) 267) 참고인 이재현 진술조서(2009.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