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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116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일 경찰이 처음 들어왔는데 그날 복룡마을 앞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저녁에 돌아왔다. 저 녁이 되어도 숙부 장재록이 돌아오지 않으니 동네에서 찾으러 다녔다. 숙부의 말을 듣고 시신은 아버지가 찾아서 매장하셨다”고 진술하였다. 253) 양재리 모량과 장재동 주민이 인근 상막재에서 경찰에게 선별되어 살해된 사건에 대하 여 주민 모학기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당시 모량마을은 40가구가 넘었는데 대부분 상막재로 피난을 갔습니다. 이전에는 경찰 이 작전을 들어오지 못하다가 그날 처음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날 상막재에서 사망하신 분 은 모종두의 숙부 모양선, 모종채의 부 모일기, 모성만의 어머니와 누나 모복님, 조남승의 사촌형 조상술 등입니다. 시신은 경찰이 물러난 뒤 가족들이 수습하여 안장하였습니다.” 254) 1950년 12월 12일 작전 이전 함평읍으로 시계를 고치러 나가다가 경찰에 연행되어 살 해된 경우도 있었다. 양재리 모량 모근배(다-4286)의 형 모용배는 시계를 고치러 함평읍 으로 나가다 산남리 감남마을 앞에서 경찰에 연행되었다. “당시 나다니기가 쉽지 않았는데 형님은 시계를 고치러 가다가 경찰에 연행되었습니다. 연행소식은 우리 마을이 처가인 나근행이 함평경찰서 의용소방대원이었는데 그 분에게 들 었습니다. 어머니가 함평경찰서에 면회를 가셨다가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습니다. 함평중학 교 앞에서 시신은 수습하였습니다. 형님 또래 3분이 좌익 활동을 하였는데 한 분은 입산하 여 행방불명되었고, 한 분은 자수, 한 분은 복역한 후 사망하였습니다.” 255) 모근배의 형 모용배의 사망사건에 대하여 참고인 모학기는 “모용배는 경찰 진주 이전 에 함평읍에 시계를 고치러 나가다 경찰에게 연행되었다. 시신은 함평읍 장년리에서 수 습하였다”고 진술하였다. 256) 나) 북성리 군유산 아래인 북성리 차경마을은 신광면 송사2리 삼천동, 해안마을과 인접하고 있다. 경찰은 1950년 12월 12일 신광면 계천리 경찰고지에서 이 마을을 거쳐 북성리에 들어왔 다. 이날 경찰이 사기, 승선마을까지 진주하였다는 진술은 없었는데 경찰은 차경마을까지 253) 참고인 장갑순 진술조서(2009.5.29.) 254) 참고인 모학기 진술조서(2009.5.27.) 255) 신청인 모근배 진술조서(2008.6.11.) 256) 참고인 모학기 진술조서(2009.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