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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115 수습하였는데 어머니는 묘를 만들어 드렸지만, 누님은 어려서 묘를 쓰지 않았다”고 진술 하였다. 249) 다음은 모양선, 모일기, 김소금과 모복님 모녀의 사망사실에 대하여 참고인 모학기의 진술이다. “모성만의 어머니와 누나는 1950년 음력 11월 4일 상막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경찰이 그날 처음 작전을 들어왔습니다. 그날 상막재에서 사망하신 분은 모종두의 숙부 모양선, 모 종채의 부 모일기, 모성만의 어머니와 이복누나 모복님, 그리고 모종두의 외숙 김복현, 모 종군의 외숙 염양수, 조남승의 사촌형 조상술 등입니다. 그날 아침, 처음에는 주포 쪽에서 경찰이 들어오더니 나중에는 사방에서 경찰이 들어 와 저는 양재리 장재동에서 경찰에 연 행되어 신광 계천리 경찰고지로 잡혀갔다 돌아왔습니다.” 250) 모량마을 조남승의 사촌형 조상술도 경찰의 총격에 사망하였다. 사건 당시 장재마을에 있었던 조남승의 진술이다. “경찰이 우리 마을을 반란군 협조 마을로 간주하고 소탕작전을 자주 나왔습니다. 우리 마을에서는 경찰만 온다고 하면 모두 뒷산으로 피신을 다녔는데 그날도 경찰이 들어온다는 소식에 뒷산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경찰이 뒷산을 수색하면서 숨어있는 사람을 찾아내어 젊은 남자들은 상막재로 끌고 가서 총살하였는데 사촌형 조상술도 이때 죽었습니다.” 251) 손불면 양재리와 인접한 영광군 염산면 오동리에도 같은 날 경찰이 진주하였다. 박연 순의 시아버지 장재록(1908년 출생)은 마을에 들어온 경찰에게 양재리 뒤 월암산으로 연 행되어 그곳에서 살해되었다. “시집와서 시어머니께 들었는데 시아버지는 12월 12일(음력 11월 4일) 경찰이 마을에 들 어오니 피난을 나가셨답니다. 시아버지는 경찰에 의하여 손불면 양재리로 연행되어서 돌아 가셨다는 말을 듣고 시신수습은 가족이 하였다고 합니다. 경찰이 그날 마을에 불을 질러 피 난을 갔다가 돌아와서는 살 곳도 없었다고 합니다.” 252) 영광군 염산면 오동리의 상황에 대하여 장재록의 조카 장갑순은 “사건 당일인 12월 12 249) 신청인 모성만 진술조서(2008.6.26.) 250) 참고인 모학기 진술조서(2009.5.27.) 251) 신청인 조상술 진술조서(2008.5.20.) 252) 참고인 박연순 진술조서(2008.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