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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113 월 13일) 경찰에게 대동면 연암리 옥령동으로 연행된 후 살해되었다. 박준수가 연행․살 해되던 상황에 대한 박병량의 진술이다. “사건이 날 때 저는 외가인 영광군 묘량면 삼학리에 있었습니다. 사건에 대한 내용은 큰 아버지에게 들었는데 현재는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는 광암리에서 소개 나갔다가 불갑산 대보름 작전도 끝나고 농사철이 되었고, 경찰이 들어가서 농사를 지으라고 하여 들어왔는 데 경찰기동대가 마을에 들락거리면서 젊은 사람이라고 잡아다가 죽였다고 합니다.” 240) 박병량과 6촌간이면서 시신수습까지 하였던 참고인 박용원은 이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 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돌아가신 박준수가 당숙이어서 제가 시신을 수습하러 갔었습니다. 당숙은 1951년 대보 름 작전 후 함평경찰서 기동대가 연행하여 대동면 연암리에서 살해하였습니다. 그 분은 어 떤 활동을 할 분도 아니었는데 경찰이 보이기만 하면 잡아가는 형국이라 연행되었던 것입 니다. 같은 날 대각리 2구 각궁마을 최철규도 죽었습니다. 밤에는 불갑산에서 빨치산 잔당 이 식량을 가져갔습니다.” 241) 나. 함평 수복 이후부터 군유산작전 이전 사건 1) 손불면 가) 양재리 경찰은 1950년 12월 12일(음력 11월 4일), 양재리에 처음 들어왔다. 모량마을 모종두(다 -4279)의 숙부 모양선, 모종채(다-4289)의 아버지 모일기, 박래길(다-4425)의 아버지 박 진구, 모성만(다-10815)의 전모(前母) 김소금과 누나 모복님, 조남승(다-10816)의 사촌형 조상술과 박연순(미신청)의 시아버지 장재록 등 모량마을 주민들은 경찰이 처음 들어온 이날 마을에서 3㎞ 정도 떨어진 ‘상막재’ 242)로 피난을 갔다. 다음은 신청인 모종두의 진술 이다. “1950년 12월 12일 점심 때 쯤 경찰이 마을에 들어오자 저는 아버지와 양재리 장재마을 240) 신청인 박병량 진술조서(2008.3.29.) 241) 참고인 박용원 진술조서(2009.6.18.) 242) 양재리에서 군유산 정상 방향의 능선으로 움푹 팬 부분이 있어 은신하기에 적합한 지형으로 사건 당일 양재리 주민들이 이곳에 피신을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