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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권 112 2009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습니다. 경찰과 의경이 동네를 포위하고 네 분을 연행․총살하였습니다. 경찰이 아버지를 끌고 나오는 것을 집에서 보았습니다. 시신은 사촌형님이 수습하셨습니다.” 235) “아버지는 외가가 광주여서 그곳으로 피난을 갔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고향에 계 시니까 고향에 다니러 오셨다가 경찰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우리 집안이 정태진과 한 집안이었습니다. 아버지 시신은 정태진의 집에서 연락이 와 집안에서 수습하여 월악리 선 산에 매장하였습니다.” 236) 사건 당시 외치리 백야마을에 살고 있던 정길진은 정재두 등이 월야지서 방향으로 연 행되는 것을 보았고, 얼마 뒤 외치리 백야마을 모퉁이에서 들려오는 총성을 들었다고 하 였다. 사건 발생이유에 대하여 정길진은 월야지서 ○○○ 순경이 자신의 처가가 인민군 점령기 인민군에게 살해될 때 막지 않은 것에 앙심을 품었다고 진술하였다. 다음은 참고 인 정길진의 진술이다. “저는 백야 작은 마을에 살았고 정재두는 백야 큰 마을에 살았습니다. 돌아가신 정재두 는 집안 형님인데 월야지서 경찰 ○○○에게 연행되어 월야지서로 가다가 외치리 산언덕에 서 살해되었습니다. 함께 돌아가신 분은 정판근, 장동섭 등으로 네 분은 연배가 비슷합니 다. 인민군 점령기 ○○○의 처가가 피해를 보았는데 그 보복으로 죽였습니다. 현재 월야중 학교 뒤에 지서가 있었는데 ○○○의 처가가 지서부근에 있었습니다.” 237) 정재두 등 4명의 주민이 월야지서 경찰 ○○○에게 살해된 사건에 대하여 당시 월야지 서 토벌중대장이었던 오정인은 “○○○은 월야지서에서 근무하였다. ○○○이 죽인 사람 을 아는데 그 사람은 김일동으로, 김일동이 인민군 점령기에 자신의 가족을 죽였기 때문” 이라고 진술하였다. 238) 다) 해보면 239) 불갑산 토벌작전 이후 경찰은 빨치산 잔당을 소탕하기 위하여 불갑산 인근에서 작전을 하였다. 해보면 광암리 운암 박병량(다-5306)의 아버지 박준수도 1951년 3월 20일(음력 2 235) 신청인 장철금 진술조서(2008.8.6.) 236) 신청인 정광섭 진술조서(2008.3.22.) 237) 참고인 정길진 진술조서(2009.6.16.) 238) 참고인 오정인 진술녹취(2008.9.22.) 239) 해보면은 관내에 불갑산을 끼고 있어 한국전쟁 전후의 시기에 빨치산의 활동이 두드러졌던 지역이다. 해 보면의 동쪽에는 월야면, 남서쪽에는 나산면, 서북쪽에는 신광면과 접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