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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부 제2소위원회 사건(4)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13 함평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결정사안】 전라남도 함평지역 주민이 1951년 2월 19일 군유산 공비토벌작전 이후 전라남도경찰국 기동대와 함평과 영광경찰서 기동대에게, 1950년 12월 12일 공비 토벌작전을 마친 경찰 에게, 그리고 한국전쟁 이전 경찰 또는 군인에게 적법 절차 없이 살해된 사건에 대하여 진실규명한 사례. 【사건요지】 1. 유대익 외 224명 이상의 주민이 1948년 10월 22일부터 1951년 7월 10일까지 전라남 도 함평군 함평읍, 손불면, 신광면, 대동면, 나산면, 해보면, 월야면, 엄다면 등에서 군유산 토벌작전을 수행하던 전라남도경찰국 기동대, 함평과 영광경찰서 기동대 및 국군에 의하 여 함평군 관내에서 살해되었다. 2. 조사결과 밝혀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라남도경찰국 기동대, 함평과 영광경찰서 기동대는 1951년 2월 19일 ‘군유산 토벌작 전’이 끝난 직후 군유산과 그 인근에서 “경찰이 작전을 들어오게 되면 군유산으로 피난을 가는 것이 안전하다”는 빨치산 등 좌익세력의 선전에 피난을 나왔던 배복치 등을 살해하 였다. 또한 경찰은 군유산 토벌작전 다음날 손불면 학산리에 들어와 주민들에게 밥을 시 켰다가 “여자들이 없으니 밥이 조금 늦겠다”는 말을 듣고 주민 백판준 등을 현장에서 살 해하였으며, 한국전쟁 이전인 1948년과 1949년에도 ‘반란군에 협조하였다’는 이유로 월야 면 용정리 양윤초 등을 살해하였다. 3.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를 통하여 희생사실이 확인 또는 추정되는 사람은 모두 225명 이다. 이 중 희생사실이 확인된 사람은 184명이며 희생추정자는 41명이다. 그리고 희생자 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채산수(蔡山水․다-10801)는 부상을 입고 생활하다가 1981년에 사망하였다. 4. 이 사건 희생자 225명 중 여성이 35명(15%)이었으며, 10세 이하와 51세 이상도 37명 (16%)이었다. 또 사망 당시의 직업은 농업이 압도적으로 많은 185명이었지만 상업 종사 자 5명, 학생 4명, 공무원 3명, 교사도 3명이었다. 공무원 중에는 전임 면장도 있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