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6page

차 집단학살1950. 12. 31<4 > 해보면 대창리 쌍구룡에서 피난중인 대창리 주민에게 무차별 총을 쏘아- 여명을 학살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들샘에 시체를 수장함70 . 차 집단학살1951. 1. 12<5 > 해보면 상곡리 모평마을 주민들에게 소재지로 피난토록 지시한 후 피난- 대열에 총을 난사하여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학살하여 여명이 학살됨60 . 차 집단학살1951. 1. 14<6 > 나산면 우치리 소재마을에서는 미처 피신을 못하고 집에 있는 노약자를- 마을앞 논으로 집결시켜 명을 학살하고 가옥 동을 소실함36 5 . 차 학살1950. 11. 27<7 > 월야면 월야리 전하마을 거주 정창기 광주세무서 근무 외 명이 광주로- ( ) 3 피난 가는 도중 월야리 가마소 광대마실 에서 중대 군인이 학살한 후( ) 5 소지품을 검사하며 현직 세무서직원 신분을 보고 아까운 인물이라며 가족에게 수습토록 연락. 차 학살1950. 11. 27<8 > 광주시 광산구 덕림동 거주 유태열등 명이 월야면 경계에 있는 주막에- 8 모여있는데 외치제 도로변으로 이동시켜 학살함. 년부터 년1951 1960 유족들이 탄원과 진정서를 제출하며 억울한 죽음을 각계요로에 호소- . 관련 유족들 관계기관에서 수배 및 구금조치- . 김의택의원 발의1960. 5. 18< > 제 대국회 제 차임시회 차본회의에 국회차원 양민학살사건진상조사- 4 35 19 특별위원회 구성 발의. 한국일보에 특집보도4293. 5. 20. 1960. 5. 21< > 광주 주재 이상문 사진 기자가 현지 취재 회 특집보도- ‘ ( )’ 2 전남 함평서도 양민천여 나는 시체더미서 살아났다- ‘ ’ , ‘ ’ -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