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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 김영호3) 한국전쟁 당시 대동면 향교리 송산마을에 살던 김영호는 군경의 수복작전이 벌어지자 가족들을 데리고 향교리 서교마을로 피난을 갔다가 돌아왔는데 마, 1950. 12. 19. 을사람 중 누군가가 그를 부역자로 지목하여 경찰에 연행된 뒤 같은 면 강운리에서 백호리로 넘어가는 공동묘지 부근에서 경찰에 의해 총살되었다. 망 정동일4) 위 망인은 당시 방위장교 교육을 받던 중 잠시 휴가를 나와 군경의 토벌작전을 피해 복흥리 복치마을로 소개( )疏開 나왔다가 빨치산들에게 잡혀 군유산으로 끌려갔는데, 군유산 토벌작전 중인 경찰은 위 망인을 빨치산으로 오인하여 사살대상으로 분류한 뒤 손불면1951. 2. 19. 북성리 사기마을 뒤에서 총살하였다. 망 김인수 박해남5) , 김인수의 본처인 박우녀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박해남은, 김인수의 집에 첩으로 들어와 아들인 원고 김용구를 낳았다. 김인수와 박해남은 경찰이 덕산리1950. 12. 24. 내덕마을에 들어와 마을 주민들을 집결시켜놓고 부역자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부역자로 지목되어 덕산리 고산동 뒷산으로 끌려가 경찰들에게 총살을 당하였다. 망 서균선6) 망인은 당시 가족들과 함께 영광군 백수면을 거쳐 손불면 월천리 일공구마을로 피신하여 있던 중 경찰 의, 1951. 2. 19. 군유산 토벌작전 때 다들 살려면 군유산으로 가야 한다 는‘ ’ 위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군유산으로 피난을 갔다가 손불면 학산리 지호마을 쪽에서 경찰에 붙잡혀 살해되었다. -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