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page

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옛 이. 야기가 실감 났습니다 막내 삼촌 동수는 장가를 가지 않. 아서 손이 없기에 제사밥을 얻어먹을 기회도 없답니다. 정근욱 그 뒤로 근한씨는 어떻게 생활 하셨습니까: ?● 정근한 광주로 나가서 학업을 계속하였습니다 다행히도: .◉ 부모님이 계시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수월했습니다 광주. 동중학교와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남대학교 문리과 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후 중 고등학교에서 교편 생활을 하, 면서 살아 왔습니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당시의 학살에. 대해서 생각해보니 너무도 억울하고 분하기 짝이 없었습 니다 그래서 시간이 나는대로 학생들에게 남을 괴롭히거. ‘ 나 피해주는 행동은 하지 말라 고 가르쳤습니다 강인하게’ . 말하면 학생들이 왜 그러느냐고 묻는 애들이 있기에 남산 뫼 학살에 대해서 말을 해주면 숙연해지곤 하였습니다. 학살을 방지 하려면 후세들에게 교육을 통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상을 알리고 얼마나 큰 죄악인지 설. 명을 해주면서 피해자의 가족들이 겪을 슬픔을 알려주어 야 합니다 체계적인 교육으로 말입니다 특히 젊은 층에. . 게 더욱 교육이 필요합니다 군인들에게도 철저하게 교육. 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실위원회에서 진실규명. 결정서를 보내왔는데 정부에 대해서 권고한 내용중에 교 육을 시키라는 항목이 있는데 제대한 군인들에게 물어보 니 교육을 받은 일이 없다고 답변하였답니다. 독일이라는 나라는 차 세계대전과 차 세계 대전을 일으1 2 킨 나라이지만 지금까지도 당시의 군인들이 저지른 잘못 에 대해서 사과하고 배상을 하는 모습들은 우리들이 배워 야 합니다 국민정신이 우리나라 사람들과 확인하게 다른. - 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