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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고 나도 집에와서 간단히 준비해서 해보로 피난을 갔습 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집에 계셨습니다 우리들에게. . 피난가라고 지시한 후에 보니 벌써 집에 불을 지르고 있 어 마을 전체가 불났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불을 끄기 위해 집에 계셨습니다. 해보로 피난갔다가 광주로 가는 버스가 오지 않아 집으 로 와보니 연기로 마을이 가득했고 우리집도 타다가 남은 부분이 있는데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얼마 후 나. 는 광주로 갔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광주로 피난 가셔. 서 오시지 않아 희생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그때 수창초등학교 학년 학생 신분이었고 어지러6 , 운 시대이기에 광주서 걸어서 월야 집에까지 와서 있었습 니다 남산뫼에서 사람들이 여명정도가 죽었다는 이야. 200 기를 들었고 정동수 막내 삼촌이 남산뫼에서 희생되셨습 니다 그때 우리마을 지변 사람들 여명의 젊은이가 죽. ( ) 100 었습니다. 둘째 삼촌인 정길문 정근우 부친 작은집( ), 정동 기 동환이라고도 불렀음 정근욱 형 형님( . ) 도 희생되셨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모골이 오싹합니다. 다시는 학살이라는 사건이 발생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정일웅 당숙은 용케도 키가 작아서 살이지만19 학살대상자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운이 좋았답니다 당시. . 군인 한명 후에 들으니 중대장 연락병 김일호 일병 이 머( 5 ) 리를 깍았고 비단옷을 입고 있어서 불러내어 학살자 대열 에서 빼내주어 살려 주었지요. 그런가 하면 옆집의 정남식 호적은 정남숙 은 총을( ) 7~8 발 정도를 맞았으나 정통으로 맞지 않아 학살현장에서 살 아나왔고 가을의 늙은 호박속을 총상부위에 붙여서 지혈 -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