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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에 면사무소에서 혁띠를 주어 차고 다니셨기에 혁띠를 보고 확인하여 시신을 수습했답니다. 학살 현장에 갔을때 많은 사람이 죽어 있어서 시신을 확 인 하려고 시체를 뒤졌고 그 과정에 마을에서 사는 사람 중에 같이 죽은 사람은 없어서 시신을 확인하는데 더욱 어려움이 컷다고 합니다. 아버지 시신은 쌍구룡 교회 뒤에 가매장을 하여 지금까지 그대로 묘가 있습니다 내가 그 뒤로 외지로 나가서 돌아. 다니느라 정황이 없어서 묘 관리를 못했습니다. 재적부에는 년 월 일오후 시 본적지에서 사망한 것1965 1 1 3 으로 정리가 되어 있는데 이것은 어머니 유희순 년(1926 6 월 일생 이 재혼을 하기위해 아버지를 사망 정리한 것입4 ) 니다. 자녀는 나와 밑으로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돌이 되기전 에 여동생은 사망하여 나 혼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년에 결혼하여 년에 나를 낳1944 1945 았으며 내가 살 때 돌아 가셨기에 당시의 상황을 모두5 기억합니다. 나는 살에 혼자가 되어 객지 생활을 시작했습니다12 . 서울로 올라가서 외사촌 형을 찾아갔는데 서울역 앞에서 어머니가 리어가 장사를 하고 계셔서 만났으며 달간 같1 이 살다가 다방의 주방일 년 하면서 살았습니다20 . 군대는 단대 독자이기에 면제를 받아 안갔습니다. 년에 결혼하였고 다방일은 계속 하였습니다1968 . 년경에 석산에서 일을 배워서 크락샤 기술을 습득하1986 여 년 월까지 그 일을 계속 하면서 생활하였습니다2013 6 . 자녀는 남 녀이며 모두 결혼시켰습니다1 3 . - 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