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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이강년은 체포되어 사형당했으며, 김상태는 교수형을 선고받고 옥중에서 단식 자결하였다. 경기·강원 지역 역시 전기 의병에서부터 활동하였는데 후기 의병기에 더욱 치열하게 전 개되었다. 전기 의병의 경우 경기 지역에서는 이천과 양평, 강원 지역에서는 춘천과 강릉 지 역에서 활발했다. 이천 의병은 김하락 등이 단발령 공포 다음 날 이천의 이현에서 일으켰다. 이들은 광주 의병, 여주 의병과 연합하여 광주의 남한산성을 점령하고 서울 진공 계획을 수 립하였다. 이천 의병은 관군과 일본군의 공세에 밀려 남한산성 전투에서 패했으나, 경상 지 역으로 이주하여 활동을 계속하였다. 화사학파의 문인인 안승우 등은 양평의 지평에서 의병 을 일으켜 원주 관아를 점령하는 등 활동하였다. 양근 지역에서도 이승룡이 의병을 일으켜 부대를 이끌고 남한산성에 입성했으나 관군의 꼬임으로 살해당하고 말았다. 한편 춘천에서는 유생 정인희와 군인 성익환 등이 의병을 일으키고 이소응을 대장에 추대 하였다. 춘천 의병은 춘천 관찰부를 점령하고 신임 관찰사 조인승을 처단하였다. 춘천 의병 은 일본군의 공격에 이경응 등이 살해되자 일부는 강릉 의병에, 일부는 제천 의병에 합류하 였다. 여주 출신 민용호가 일으킨 강릉 의병은 원산의 일본인 거류지에 대한 공격을 계획하 고 진격하던 중에 일본군의 급습을 받고 결사 항전했다. 강릉 의병은 이후에도 영양의 김도 현 의병·강릉의 김헌경 의병과 연합하여 삼척의 삼봉산 전투를 치렀다. 1905년 중기 의병기 경기·강원지역의 중기 의병으로는 원용팔의 원주 의병이 있다. 원용 팔은 영월과 단양 일대에서 의병을 모집하고 일진회 첩자와 일본인 체신부를 처단하는 등 대 일 항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8월에 구한국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고 고종 황제가 강제로 퇴위되는 사태에 경 기·강원 지역은 도(道) 경계를 뛰어 넘어 서로 긴밀하게 연계하거나 연합 의진을 형성하여 항전하였다. 경기 지역에서는 처음에는 남부 지역인 안성·이천·죽산·여주 일대에서 일 어났는데, 여주의 이구채·김현국·윤성필, 이천의 김봉기, 양지의 임옥녀 등이 그들이다. 1907년 후반부터는 양평·용인 지역으로 확대되어 갔다. 특히 양평은 용문산이 있어서 유 격전 활동에 유리한 곳으로 조인환과 권득수 등이 대표적인 의병장이다. 강화도에서도 연기 우·지홍윤 등이 활동하였으며, 장단 출신의 김수민은 경기와 황해도를 오가면서 활동하였 다. 선산 출신의 허위는 경기 북부 지역에서 김규식, 연기우 부대와 연합하면서 활동하였다. 1907년 8월 이후 강원 의병은 춘천·원주 지역은 물론 홍천·강릉·울진 등 각 지역에서 중부 지역의 의병 전쟁과 의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