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page

2016년10월31일 월요일 2 (제118호) 종 합 숭모재(崇慕齋)는 신라고도(新羅古都)의 南쪽 十五里 지점(地点)인 배일리(拜日里) 삼릉(三陵)아래 있다. 내가 신라사(新羅史)에서 신라 시조왕(新羅始祖王)의 사적을 보니 六部大人이 멀리서 상서로운 기운이 양산(楊山)의 샘 터에 있는 것을 바라보고 가서보니 박 같은 큰 알븮卵븯이 샘 가에 있으므로쪼개어보니 어린아이가나왔는데장성함에 추대(推戴)하여 임금을 삼았고 그때의 방언(方言)이 표 (瓢)를 박이라 하였기로 朴으로 성씨(姓氏 )를 삼았다 한 다. 六部의 백성이 王으로 받들어 모시고 三韓이 귀순(歸 順)하여 昔氏와 金氏에게 번갈아 선위(禪位)하여 千年을 향국(享國)하니 아! 장하실사 요순성군(堯舜聖君)의 선양 (禪讓)하는 미풍(美風)을 다시 본 듯하였으나 사세(事勢) 가 다르고 世代가 멀기 때문에 오히려 믿어지지 않았더니 丙午年(1906) 봄에 내가 경주군수(慶州郡守)로 오게 되어 고적(古蹟)을 탐방(探訪)하니 시조(始祖)가 탄강(誕降) 하신 나정(蘿井)을 고로(古老)가 지점(持點)하고 성령(聖 靈)을 봉안(奉安)한 숭덕전(崇德殿)에 선비들이 정성 모 아 제사하며 오릉(王陵)의 송백(松柏)이 울창하게 눈앞에 가려지니 과연 역사(歷史)가 나를 속이지 않음을 믿게 되 었다. 어느 날 성손 영복(姓孫 英復)이 나를 찾아와서 말하기 를 뷺始 祖 王 을 봉 안 한 숭 덕 전 (崇 德 殿 ) 은 있 으 나 그 외 의 先 祖의 王陵에는 제물(祭物)을 마련하는 재사(齋舍)가 없을 수 없으므로 잔미(殘微)한 後孫들이 힘을 합해 자금(資金) 을 모아 壬寅(1902)년 봄에 숭덕전(崇德殿)남쪽 十五里되 는 배 일 촌 (排 日 村 ) 東 쪽 에 재 사 (齋 舍 ) 를 세 우 니 곧 사 왕 릉(四王陵)의 아래이다.뷻 오산(鰲山)을 우러러보고 문수 (蚊水)가 뒤에 둘러지고 西로는 도악(桃岳)을 바라보고 南 으로 남계(藍溪)를 끼고돌아 용(龍)이 날으고 봉(鳳)이 춤 추는 듯 명당(明堂)에 기운을 맺었다고 하겠다.이 재사(齋 舍)가 子孫이 세운 바이나 은연(隱然)히 숭덕전(崇德殿) 과 함께 숭봉(崇奉)하는 뜻에서 나온 것이다. 甲辰(1904) 년 봄에 협랑(夾廊)을 증축(增築)하여 숭모(崇慕)로 현판 하니 대개 숭봉(崇奉)하고 추모(追慕)하는 뜻이다. 이제 낙 성 (落 成 )을 즈 음 하 여 나 에 게 기 문 (記 文 ) 을 청 하 니 내 고 적(古蹟)에 느낀바 있고 아울러 後孫들의 정성을 아름답게 생각하여대략전말(顚末)을기록하노라. 1907년 경주군수 여흥 민영만 지음 경주고도(慶州古都) 南方 十五里 금오산주맥(金鰲山主 脈) 삼릉하(三稜下) 숭모재는 신라 八代 아달라왕(阿達羅 王)과 五十三代 신덕왕(神德王)五十四代 경명왕(景明王) 그리고 五十五代 경애왕릉(景哀王陵) 등의 재숙소(齋宿 所)이다. 내가 고요히 옛 일을 살펴보니 세종대왕(世宗大王)께서 주(周)나라 삼각(三恪)의 의(義)에 따라 신라시조대왕의 사당(祠堂)을 창건(創建)하시고 능침(陵寢)을 보수(補 修) 지극(至極)히 숭봉(崇奉)하셨으나 다만 우리 사왕릉 (四王陵)은 잡초(雜草)로 황폐(荒廢)하여 유민(遺民)들 의 슬픔과 탄식(歎息)을 자아내게 했다.그 뒤 高宗(壬寅,1 902)에 후손들이 합의(合議)하여 능침(陵寢)을 보수(補 修) 능하(陵下)에 재사(齋舍)를 신축(新築) 숭모재라 편 액(扁額)하여 재숙소(齋宿所)로 삼았다. 그 후 백여년의 세월이 흐른 작년(昨年)기축(己丑븡2009년)7月에 내가 숭 덕전 참봉으로 도임(到任) 四王陵을 봉심(奉審)하고 숭모 재에 심방(審訪)했더니 건물과 원장(垣墻)이 풍우(風雨) 에 퇴락(頹落)하여 도괴(倒壞) 위험(危險)에 있고 정원 (庭園) 잡초(雜草)는 키를 능가(凌駕)하게 자라 왕릉재소 라 하기에 실로 민망(憫 묩)한 지경(地境)에 처(處)해 있었 다. 관리인에게 잡초제거를 命하고 재사건물(齋舍建物) 중 건계획(重建計劃)을 시도(試圖) 숭덕전 예산(豫算)을 챙 겨봤더니 억대소요(億 臺所要) 공사비(工事費) 부담(負 擔)이 불가능(不可能)하여 애만 태웠다. 그래서 경주시청 을 방문 상황(狀況)을 알리고 당국(當局)에 예산보조신청 (豫算補助申請)을 한 後에 경북도지사에게 지원(支援)을 간청(懇請)했다. 그랬더니 금년도(今年度)에 정부예산(政府豫算) 1억원 이 책정(策定)되어4월 14일 십왕릉 참봉(十王陵參奉)들과 함께 숭모재중수(崇慕齋重修) 고유제(告由祭)를 거행(擧 行)했다. 공사 인부들이 기왓장을 걷어내니 기와는 깨어지 고 연목(椽木)은 썩고 가늘어 모두 교체(交替)했다. 내부 수리까지 삼개여월(三個餘月)에 걸려 7月에 준공(竣工)하 여 현판(懸板)을 다시 게액(揭額)하니 그 장엄(莊嚴)함이 비로소왕릉재사(王陵齋舍)의면모(面貌)를갖추었다. 이는 김관용(金寬容)경상북도지사를 비롯 박병훈(朴炳 勳) 도의원 백상승(白相承) 경주시장 박찬동(朴贊東) 문 화재과장 그리고 공사를 맡았던 장병철(張炳哲) 유성건설 사장의 지극(地極)한 관심(關心)에서 이룩된 것이니 감읍 (感泣)할따름이다. 아! 우리 四王께서는 始祖大王님의 성총(聖寵)을 이어 받은 후덕(厚德)인 것으로 그 치적(治積)은 창상(滄桑)이 거듭된 오늘에 이르렀어도 그 성덕(聖德)은 세상에 밝은 빛이되고있도다. 이 건물(建物) 대지(垈地)에 지난 날 숭덕회관(崇德會 館)을 건립(建立)코저 추진(推進)했던바 있으나 성사(成 事)되지못했다. 숭모재(崇慕齋)는 숭덕전(崇德殿)과 함께 숭봉추모(崇 奉追慕)하는 곳이니 이제 중수(重修)를 필(畢)하게 되어 앞으로 족(足)히 百年은 지탱(支撑)할 것이로다. 내가 비 록 졸문(拙文)이나 제족친(諸族親)의 권유(勸誘)로 후일 을 위해 그 전말(顚末)을 살펴 외람(猥濫)되나마 흠쾌(欽 快)한 마음으로 몇 자를 적어 숭모재중수기문(崇慕齋重修 記文)으로삼는다. 2010년8월숭덕전전참봉박희학지음 재실탐방 숭모재(崇慕齋) 뱚숭모재기(崇慕齋記) 뱚崇慕齋重修記文(숭모재중수기문) 홀기(笏記)는 대중의 집 회·제례 등의식에서 그 진 행 순서를 적어서 낭독하 게 하는 기록을 말한다. 홀 기의중요성을새삼거론하 지 않더라도 우리가 제향 을 받들 때 홀기가 없다면 간혹 순서가 바뀌어 실수 를 범하는 경우가 간혹 있 다. 홀기에 대해 백과사전은 다 음 과 같 이 정 의하 고 있 다. 븮홀(笏)븯은 중국에서는 이미 주대(周代)에 사용되었다는 기 록이 있다. 처음에는 문관이 모양을 꾸미는 장식품의일종으 로, 임금에게 보고할 사항이나 건의할 사항을 간단히 적어서 잊어버리지 않도록 비망하는 것이었다. 신분에 따라 규격과 색채와 질이 정해져서 중국에서는 옥·상아·서각(犀角) 등이 사용되었다. 중국 문화의영향을 받아 온 우리나라에도 이 제도는 오래 전에 도입되었다. 조선조가 창건되어 유학이 국교로 채택되 자홀에대한제도도확정되었다.조선조에제정된홀은한자 정도의길이에두치정도의너비로얇은것이며,1품에서4품 까지는 상아로 만들고 5품 이하는 나무로 만들어 쓰게 하였 다. 홀기는 이 홀의사용이 발달됨에 따라 생겨난 것으로,문명 이 발달될수록 생활의 방식도 복잡해지고 그에 따라 생활을 통제하는방법도번잡해졌다. 인간을자율적으로통제한다는예는점차까다로워져서자 칫하면 착오를 범하기가 일쑤고,그 착오는 실수로 좋게 이해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끌어내리고 파멸시키는 도구가 되 었다.따라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사전 준비와 보 고를 행하는 절차가 필요했으며,그 필요에 따라 발달한 것이 홀기다. 홀기는크게는국가의조참(朝參)과 상참에서부터종묘·사 직·배릉(拜陵) 등의 의식에 이용되고, 작게는 시학(視學)·입 학(入學)·석전(釋奠)·전시(殿試)·방방(放榜)을비롯해양로연 (養老宴)등에도이용되었다. 민가에서는 서원의유회,향회(鄕會)를 비롯해 향음주례(鄕 飮酒禮)·강학례(講學禮)등에도 이용되고 심지어 혼례·관례· 제례 등사가의행사나 의식에까지도 이용되었다. 홀기는 절 차를 미리 의정해 그대로 시행함으로써 절차의 오류를 막고 시비의근원을방지하는장점이있다.』 그동안본보에서는숭덕전의춘추향대제,밀성대군단홀기 를 다룬바 있는데 많은 독자들이 각 문중의홀기를 실어 자기 문중의홀기와비교하며우리의전통예절인제례문화를잇기 위해노력하자는제의가있어이번호에는율산서원의홀기를 실어본다. 至今(지금)부터 栗山書院 春(秋) 季 향사(享祀)를 봉행 (奉行)하겠습니다. ○獻官以下諸執事各就位(헌관이하제집사각취위) 헌관이 하모든집사는각자자리에서시오 ○謁者 引初獻官 陞自東階 點視陳設(알자 인 초헌관 승자 동계 점시진설)알자는 초헌관을 인도하여 신위 앞에 나아가 제수를점검하시오) ○祝開똘啓盖(축개독계합)축은 시위함을 열고 제수의 뚜 껑을걷으시오○因降復位(인강복위)제자리로돌아가시오 ○祝及諸執事 入就拜位(축급제집사 입취배위)축을 비롯 한 모든 집사 절하는 자리로 나아가 서시오 ○學生及諸執事 俱再拜(학생급제집사구재배)학생을 비롯한 모든 집사는 함 께절두번하시오(拜○興○拜○興) ○祝及諸執事詣꿍洗位(축급제집사예관세위)축을 비롯한 모든 집사 손 씻는 자리로 나아가 서시오 ○ 꿍썅訖各就位(관 세흘각취위)손을씻고각자자리에서시오 ○獻官入就拜位(헌관입취배위)헌관은 절하는 자리로 나 아가시오 ○獻官以下皆再拜(헌관이하개재배)헌관이 모두 절두번하시오(拜○興○拜○興) ○ 謁 者 引 初 獻 官 詣 꿍洗位(알자 인 초헌관 예관세위) 알 자는 초헌관을 손 씻는 자리로 인도하시오.○ 꿍水썅手(관수 세수)헌관은손을씻으시오. ○引詣密城大君神位前 눠焚香(인예밀성대군신위전궤분 향)밀성대군신위전에꿇어앉아향을피우시오 ○祝以幣授初獻官(축이폐수초헌관)축은 폐비를 가져다 헌관에게 주시오 ○初獻官 執幣 獻幣○祝受幣奠于神位前 (초헌관 집폐 헌폐 축수폐전우신우전) 헌관은 폐비를 받아 헌폐하고축에게주시오.축은신위전에올리시오 ○뮐伏興(면복흥)구부리며일어나시오 ○引詣펠所 北向立(인예준소 북향립)술따르는 장소로 나 아가북쪽을향해서시오 ○執事者以爵授初獻官(집사자이작수초헌관) 집사는 술 잔을초헌관에게드리시오 ○司尊 擧冪酌酒(사준 거멱작주) 사준은 멱(덮개 혹은 마 개)을거두고제주를따르시오. ○初獻官以爵授執事(초헌관이작수집사) 초헌관은 술잔 을집사에게주시오 ○引詣神位前눠(인예신위전궤) 초헌관은 신위전에 나아 가꿇어앉으시오 ○執事者눠 ○以爵授初獻官(집사자궤 이작수초헌관) 집 사도 꿇어 앉아,술잔을 헌관에게 드리시오 ○初獻官執爵獻 爵(초헌관 집작 헌작)헌관은 술잔을 받아 헌작하고 집사에 게주시오. ○執事者受爵奠于神位前(집사자집작전우신위전) 집사는 술잔을신위앞에올리시오. ○ 뮐伏興少退눠(면복흥소퇴궤) 구부렸다가 일어나 조금 물러꿇어앉으시오 ○祝進詣初獻官之左 東向눠(축진 예 초헌관지좌 동향궤) 축은 초헌관 왼쪽에서 동쪽을 향해 꿇어 앉으시오 ○讀祝文 (독축)축문을읽으시오. ○因降復位(인강복위)헌관은본래자리로돌아가시오. ○謁者 引亞獻官 詣꿍洗位(알자 인 아헌관 예관세위) 알 자는 아헌관을 손 씻는 자리로 인도하시오.○ 꿍水썅手(관수 세수)헌관은손을씻으시오. ○引詣펠所 北向立(인예준소 북향립) 술 따르는 장소로 나아가북쪽을향해서시오 ○執事者以爵授亞獻官(집사자이작수아헌관) 집사는 술 잔을아헌관에게드리시오 ○司尊 擧冪酌酒(사준 거멱작주) 사준은 멱(덮개 혹은 마 개)을거두고제주를따르시오. ○亞獻官以爵授執事(아헌관이작수집사) 아헌관은 술잔 을집사에게주시오 ○引詣神位前눠(인예신위전궤) 아헌관은 신위전에 나아 가 꿇어앉으시오 ○執事者 눠 ○以爵授亞獻官(집사자궤 이 작수초헌관)집사도꿇어앉아,술잔을헌관에게드리시오 ○亞獻官 執爵 獻爵(아헌관 집작 헌작) 헌관은 술잔을 받 아 헌작하고 집사에게 주시오. ○執事者受爵奠于神位前(집 사자집작전우신위전)집사는술잔을신위앞에올리시오. ○ 뮐伏興 ○因降復位(인강복위) 구부렸다 일어나 헌관은 본래자리로돌아가시오. ○謁者 引終獻官 詣꿍洗位(알자 인 종헌관 예관세위) 알 자는 종헌관을 손 씻는 자리로 인도하시오.○ 꿍水썅手(관수 세수)헌관은손을씻으시오. ○引詣펠所 北向立(인예준소 북향립) 술 따르는 장소로 나아가북쪽을향해서시오 ○執事者以爵授終獻官(집사자이작수초헌관) 집사는 술 잔을아헌관에게드리시오 ○司尊 擧冪酌酒(사준 거멱작주) 사준은 멱(덮개 혹은 마 개)을 거두고 제주를 따르시오. ○亞獻官以爵授執事(아헌관 이작수집사)아헌관은술잔을집사에게주시오 ○引詣神位前눠(인예신위전궤) 아헌관은 신위전에 나아 가 꿇어앉으시오 ○執事者 눠 ○以爵授終獻官(집사자궤 이 작수종헌관)집사도꿇어앉아,술잔을헌관에게드리시오 ○終獻官 執爵 獻爵(종헌관 집작 헌작)헌관은 술잔을 받 아 헌작하고 집사에게 주시오. ○執事者受爵奠于神位前(집 사자집작전우신위전)집사는술잔을신위앞에올리시오. ○ 뮐伏興 ○因降復位(인강복위) 구부렸다 일어나 헌관은 본래자리로돌아가시오. ○贊人 各 分獻官 詣꿍洗位(찬인 각 분헌관 예관세위) 찬 인은 각 분헌관을 손 씻는 자리로 인도하시오. ○ 꿍水썅手 (관수세수)분헌관은손을씻으시오. ○引詣神位前눠(인예신위전궤) 신위전에 꿇어 앉으시오 ○焚香獻幣(분향헌폐)향을피우고폐백을올리시오 ○뮐伏興引詣펠所(면복흥인예준소) 구부렸다가 일어나 술따르는곳으로가시오 ○執事者各以爵授分獻官(집사자각이작수분헌관) 집사는 술잔을각분헌관에게드리시오 ○司尊 擧冪酌酒(사준 거멱작주) 사준은 멱(덮개 혹은 마 개)을 거두고 제주를 따르시오. ○分獻官各以爵授執事(분헌 관각이작수집사)각분헌관은술잔을집사에게주시오 ○引詣神位前눠(인예신위전궤)신위전에꿇어앉으시오 ○執事者눠 ○以爵授분獻官(집사자궤 이작수종헌관) 집 사도꿇어앉아,술잔을분헌관에게드리시오 ○分獻官 執爵 獻爵(분헌관 집작 헌작)분헌관은 술잔을 받 아 헌작하고 집사에게 주시오. ○執事者受爵奠于神位前(집 사자집작전우신위전)집사는술잔을신위앞에올리시오. ○뮐伏興 ○因降復位(인강복위) 구부렸다 일어나 분헌관 은본래자리로돌아가시오. ○獻官皆再拜(헌관개재배)모든 헌관은 절 두 번 하 시 오 (拜○興○拜○興) ○謁者 引初獻官 詣飮福位 北向눠(알 자 인 초 헌 관 예 음 복 위 북향궤)초헌관은 알자의 인도를 받아 음복자리에 나아가 북쪽을향해꿇어앉으시오. ○執事者以爵酌福酒(집사자이작작복주)집사자는 술잔에 복주를따르시오 ○詣獻官之左(예초헌관지좌)헌관왼편에꿇어앉으시오. ○以爵授初獻官(이작수초헌관)술잔을헌관에게드리시오 ○初獻官 飮卒爵(초헌관 음졸작)헌관은 잔을 받아 다 마 십시오. ○執事進龜 神位前俎肉(집사진감 신위전 조육)집사는 신 위전의고기를도마위에서조금더(자름)시오. ○詣獻官之左(예초헌관지좌)헌관 왼편에 꿇어앉으시오. ○以튱授初獻官(이작수초헌관)조육을 헌관에게 드리시오 ○初獻官受튱授執事(초헌관수조수집사)초헌관은 조육을 받아드신후집사에게주시오 ○뮐伏興 ○因降復位(인강복위) 구부렸다 일어나 헌관은 본래자리로돌아가시오. ○獻官皆再拜(헌관개재배)모든 헌관은 절 두 번 하 시 오 (拜○興○拜○興) ○祝入撤븅豆(축입철변두)축은나아가변두를거두시오 ○學生以下在位者再拜(학생이하재위자재배)학생을 비롯 한 모 든 참 례 자 는 함 께 절 두 번 하 시 오 (拜 ○興 ○ 拜 ○興 ) ○謁者 引初獻官 詣望燎位 북向立 (알자 인초헌관 예망료 위 북향립) 헌관은 알자의 인도를 받아 망료위에 나아가 북 쪽을향해서시오. ○祝取祝板降自西階(축취축판 강자서계) 축은 축과 폐백 을담아서망료위로나아가시오. ○置祝於坎 焚祝(치축어감 분축) 구덩이 앞에 놓고 불사 르시오. ○訖 춤武烈朴公 ○忠簡朴公 ○忠讓朴公 ○樂山朴 公 配食 尙 饗(흘 인 무열박공, 충간박공, 충양박공, 요산박 공)이어 무열공, 충간공, 충양공, 요산공의 축문을 차례대로 불사르시오 ○禮畢(예필) 이로써 신라시조왕릉 추향행사를 마치겠습 니다. 홀기(笏記) 율산서원(栗山書院)笏記(홀기) 율산서원향사광경. 뱚 行初獻禮(행초헌례,첫번째잔을올리는의식) 뱚 行亞獻禮(행아헌례,두번째잔을올리는의식) 뱚 行終獻禮(행종헌례,마지막잔을올리는의식) 뱚 行焚香禮 (행분향례,함께배향된신위전에香을피우는의식) 뱚 行終飮福受튱禮 (행음복례,음복례를행하시오) 뱚 行望燎禮(행망료례,축문을불사르는의식) 숭모재는 경북 경주시 배동 삼릉 밑에 있으며 신라 아달라 왕,신덕왕,경명왕,경애왕의재숙소이다.최초건립시기는 1902년후손들이능침(陵寢)을수호하고향사(享祀)와재숙 (齋宿)하는 곳으로 삼았으나,현재는 숭덕전 예빈관에서 모 든 의식을 관장하면서 많은 후손들이 삼릉이나 경애왕릉을 방문 참배하고도 정작 숭모재는 모른 이가 많다.특히 최근 경주 지진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가 있어 후손들의 관심을 촉구해보며재기(齋記)와중건기를통해알아본다.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