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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6월30일 목요일 2 (제114호) 숭덕전 신라시조왕으로 신라천년의 사직의 문을 연 박혁거세 대왕의 탄강에 대해 최근 어느 단체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또 신라시조 왕은 파소의 아들이고 그 아버지의 이름 석자를 알고 있다는 역 사학자가 있어 그동안 수차에 걸쳐 게재하였으나 독자들의 요구 가빗발쳐이해를돕기위해시조대왕탄강사실을실어본다. 최근 이들은 신라시조왕에 대해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권제 12. 논왈(論曰) 조븣신라의 박씨븡석씨는 모두 알에서 나왔고, 김 씨는 황금 궤 속에 들어 하늘로부터 내려왔다고 하며, 혹은 황금 수 레 를 타 고 왔 다 고 하 니 이 는 너 무 기 괴 하 여 믿 을 수 없 으 나 , 세 속이 서로 전하여사실이라고 한다.정화(政和)연간에 우리 조정 에서는 상서(尙書) 이자량(李資諒)을 송나라에 보내어 조공했을 때,신(臣)부식(富軾)은 문필의임무를 띠고 같이 가서 우신관(佑 神館)에나아가어떤집에여인선인상(仙人像)을모셔둔것을보 았다. 사신을 접대하던 학사(學士) 왕보(王빪)는 말했다. “이것은 귀 국(貴國)의신인데공들은이를아십니까?”마침내말했다.“옛날 어떤 제왕의집딸이 있었는데, 남편이 없는데도 아이를 배어 남 에게 의심을 받게 되자, 이에 바다를 건너 진한에 이르러 아들을 낳으니해동의첫임금이되었으며,제왕의딸은지상의신선이되 어 길이 선도산(仙桃山)에 있다는데, 이것은 그 선인의 상입니 다.” 부식(富軾)은또송나라의사신왕양(王襄)이지은동신성모(東 神聖母)에게 제사 드리는 글에, ‘현인을 낳아 나라를 처음 세웠 다.’는 귀절이 있는 것을 보고 그 제사 동신(東神)이 곧 선도산의 신성(神聖)임을알았다.그러나그아들이어느때임금노릇을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븣. (原文 : 新羅朴氏. 昔氏皆自卵生. 金氏從 天入金櫃而降.或云乘金車.此尤詭怪不可信.然世俗相傳.爲之實 事. 政和中. 我朝遣尙書李資諒. 入宋朝貢. 臣富軾. 以文翰之任輔 行. 詣佑神館. 見一堂設女仙像. 館伴學士王빪曰. 此貴國之神. 公 等知之乎. 遂言曰. 古有帝室之女. 不夫而孕. 爲人所疑. 乃泛海抵 辰韓生子. 爲海東始主. 帝女爲地仙. 長在仙桃山. 此其像也. 臣又 見大宋國信使王襄祭東神聖母文. 有娠賢肇邦之句. 乃知東神. 則 仙桃山神聖者也. 然而不知其子. 王於何時븣)븯를 근거로 시조대 왕의탄강사실을부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올바로 보아야 할 대목은 마지막 『그러나 그 아 들 이 어 느 때 임 금 노 릇 을 한 것 인 지 는 알 수 없 다 븣.』이 고 , 송 나 라의 사신 왕양(王襄)이 지은 동신성모(東神聖母)에게 제사 드 리는 글에 ‘현인을 낳아 나라를 처음 세웠다.’ 는 귀절이 있는 것 을 보고 그제야 동신(東神)이 곧 선도산의 신성(神聖)임을 알았 다.” 라는 글을 옮겨 놓은 것을 두고 신라시조왕은 중국의 어느 제 왕 의 딸 파 소 가 낳 은 아 들 이 라 확 정 짓 는 것 은 다 시 한 번 생 각 해보아야할문제라고조심스럽게거론해본다. 삼국사기 저자 김부식(金富軾)이 사신을 따라 송나라에 갔다 는 정화연간(政和年間)은 송(宋)나라 휘종(徽宗)의 연호(年號) 로 A.D 1111년에서 1117년까지를 말하며 저자 김부식(金富軾) 은 이때 송나라에 사신을 따라 들어갔고 어떤 집에서 여인(女 人)선인상(仙人像)을 보았으며 사신을 접대하던 학사(學士)왕 보(王 빪)는 븣“옛날 어떤 제왕의 집 딸이 있었는데,남편이 없는 데도 아이를 베어 남에게 의심을 받게 되자,이에 바다를 건너 진 한에 이르러 아들을 낳으니, 해동의 첫 임금이 되었으며 제왕의 딸은 지상의 신선이 되어 길이 선도산(仙桃山)에 있다는데 이것 은 그 선인의 상입니다”라고 한,학사(學士)왕보(王 빪)의 이 말 을과연진실이라할수있을까? 왜냐하면,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新羅) 시조대왕 (始祖大王)께서는 B.C 57년. 전한(前漢) 지절원년(地節元年) 임 자(壬子)에 탄강(誕降)하셨으니, 김부식이 말한 정화연간(A.D 1111-1117년)과는 약 1200년 전의 일이다. 그리고 전한(前漢, 기 원전 206년~기원후 8년)과 송(宋, 960년~1279년 중국의 옛 왕조 이다)나라와는아무런관계도없으며그사이중국은왕조(王朝) 가여러차례바뀌었는데,무엇때문에송나라우신관(佑神館)어 떤집에여인선인상(仙人像)을모셔두었겠느냐는의문이다. 그럼에도왜김부식의주장(어느때임금인지모른다.)을왜곡 하여 신라시조왕이라 단정하고 파소의 아들이다 하는지 궁금증 을자아내지않을수없다. 물론 역사는 살아있는 권력에 의해 좌우된다는 말이 있듯 신 라는망하고고려왕조가부각하였음을인지해볼만하다. 그리고 또 문제는 선도산 성모사 중건기를 지은 우리 선대 종 친에게도 있는 듯 하다. 시조대왕의 난생설은 인정하면서도 이 와 상반되는 파소의 아들인 듯 묘사하는 것은 어디에 근거를 둔 것인지알수없는일이다. 그리고 중국은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2002년부터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국가적 연구 사업(동북공정븡東北工程)을 추진하면서, 중국의 이익을 위해 역사를 심하게 왜곡하여 우리 역사의 뿌리를 송두리째 훼 손하고 있다. 이에 동북공정의 역사 왜곡에 대항하기 위하여 여 러 시민 단체와 학회가 고구려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힘쓰고 있 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에서 비롯되었고, 우리 신라시조왕은 중국 어느 황제의 딸 파소의 아 들이라며 우리의 역사를 우리 스스로 중국에 넘겨주고 있지 않 나하여심히걱정스럽다. 우리는 지난 2004년 오릉 앞에 일자제각을 지으면서 문화재청 에서 조선왕릉 앞에는 모두 정자제각이 있어 오릉도 정자제각을 지어야 한다고 할 때 신라는 중국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며 유일 하게일자제각을지었던것을상고해보았으면한다. 우리 역사에는 단군설화를 비롯한 많은 설화가 등장한다. 그 렇다면 이들 설화는 믿으면서 왜 우리 시조할아버지의 탄생설화 는믿지않는지우리스스로생각해보았으면한다. 만일 모든 설화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단군 또한 믿지 못하는 일이고 일부 사람들의 주장처럼 중국의 후예가 된다는 뜻인데, 김부식도 신라시조왕이 전한(前漢) 지절원년(地節元年) 임자 (壬子)에 탄강(誕降)한 난생설을 기록하였듯 신라시조왕의 탄 생사실에 대해 더 이상 이견을 달지 말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 을담아본다. /편집자주(註) 신라(新羅) 시조대왕(始祖大王)께서 ①한 선제(漢 宣帝) ② 지절(地節) 원년(元年) 임자(壬子). 3월 초 1일 나정(蘿井)에서 탄강(誕降)하시다. <註> ①. 한 선제(漢宣帝) : 전한(前漢) 제9대효선제(孝宣帝). B.C 74-49 년재위.이름은유순(劉詢). ②.지절(地節):효선제의연호.원년.임자년은B.C69년. (原文 : 新羅 始祖大王. 漢宣帝 地節元年. 壬子. 三月朔. 誕 降于蘿井.) ○ 이보다 앞서 조선의 백성들이 동해(東海)가에 산곡(山谷) 사 이 에 분 산 (分 散 ) 해 살 고 있 는 곳 이 여 섯 부 락 (部 落 )이 있 으 니, 一은 알천양산촌(閼川楊山村)인데 지금의 담암사(曇巖寺) 촌장(村長)은 알평(謁平)이요.二는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이 니, 지금의 남산부(南山部) 촌장(村長)은 소벌도리(蘇伐都利) 요. 三은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인데, 지금의 장복부(長福部) 또는 개차산(皆此山)이니, 촌장(村長)은 구례(俱禮)요. 四는 취 산진지촌이니, 지금 통선부(通仙部) 촌장(村長)은 지백호(智伯 虎)요. 五는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이니, 지금의 가덕부(加德 部) 촌장(村長)은 지타(祗 )요 六은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 耶村)이니, 촌장(村長)은 호진(虎珍)이니 이것이 진한(辰韓)의 육부장(六部長)이다. 그때 군주(君主)가 없음을 한스럽게 여겨 서 육부촌장(六部村長)이 알천(閼川)에 모여 3일동안 목욕재계 하고 하늘에 기도(祈禱)하니, 때는 한선제(漢宣帝) 지절원년 (地節元年)임자(壬子)이다. 고허촌장(高墟村長) 소벌공(蘇伐公)이 양산(楊山) 나정(蘿 井)숲속에 말 한필이 소리 높이 울고 오색(五色)구름이 떠오르 는데 신선(神仙)이 엎드려 절하는 모습을 보고 이상히 생각하여 가 서 보 니 , 말 은 간 곳 없 고 다 만 한 포 태 ( 胞 胎 )가 알 (卵 ) 처 럼 박 (瓠)처럼 생긴 것이 있으므로 포태(胞胎)를 헤처보니,어린아이 가 나왔는데 얼굴이 아름답고 단정(端正)하므로 받들어 모셔서 동천(東川)에 목욕시키니 몸에 찬란한 광채(光彩)가 나고 새와 짐승들이 모두 춤을 추니,육촌(六村)사람들이 신기하게 태어났 다하여받들어양육(養育)하였다. 진한(辰韓) 말에 표주박을 븮박(朴)븯이라 하므로 성(姓)을 박 (朴)으로하고 빛나게 세상을 산다는 뜻으로 혁거세(赫居世)라 이름 하였다. 나이 13세에 의젓하고 숙성(夙成)하시므로 육부 (六部)사람들이추대(推戴)하여왕(王)으로모시니,한선제(漢 宣帝) ①오봉(五鳳) 원년(元年). 갑자(甲子)이다. 거서간(居西 干:진한말로 왕의 존칭또는 귀인의 존칭)이라 일컫고 국호(國 號)는서라(徐羅)라하고후에신라(新羅)로고치다. 뱚<註>①오봉(五鳳):오봉은전한 효선제의연호.원년.갑자년은B.C57년. 뱚(原文 : 先是. 朝鮮遺民, 分居東海濱山谷間. 爲六村, 一曰閼 川楊山村(今曇巖寺).其長.謁平.二曰突山高墟村(今南山部).其 長. 蘇伐都利. 三曰茂山大樹村(今長福部. 一作皆此山). 其長. 俱 禮. 四曰치山珍支村(今通仙部). 其長. 智伯虎. 五曰金山加利村 (今加德部). 其長. 祗 .六曰明活山高耶村(今臨川部).其長.虎 珍.是謂辰韓六部長.其時.悶無君長.六村長.俱會閼川.三日齋沐 禱于天. 漢宣帝 地節元年 壬子. 高墟村長蘇伐公, 望楊山蘿井傍, 林間五色雲中, 有馬大嘶, 而如仙人눠拜之狀, 卽往觀之, 馬忽不 見, 只有一胞, 如卵如瓠, 解胞, 則始祖誕生. 儀形端美. 奉浴于東 川, 身生光彩. 鳥獸率舞. 六村人, 以其生神異, 奉而養之. 辰人之 語, 謂瓠爲朴. 故以朴爲姓, 取赫赫然. 居當世之義, 以赫居世. 三 字爲諱. 年十三, 岐쳬夙成, 六部人.推尊之. 立爲君. 漢宣帝五鳳 元年甲子也. 號居西干(辰人稱王之語. 或云貴人之稱). 國號徐羅. 其後改國號曰新羅.) ※ 참고. 1. 신라에는왕(王)을거서간(居西干)이라하신분이 한 분. 차차웅(次次雄) 이라하신분이 한 분.이사금(尼師今)이라하신분이 열여섯분.마립간(麻 立干)이라하신분이 네분.왕(王)이라하신분이 서른네분이다.그러나신 라말 최치원(崔致遠)이 제왕연대역(帝王年代曆)을 지으면서 모두 왕(王)이 라한 까닭에삼국사기,삼국유사에서도모두왕(王)이라하였다. (삼국사기권제4,신라본기제4,지증마립간조). 1.삼국사기:신라본기제1.시조(始祖)혁거세(赫居世)거서간 (居西干)조. 시조의 성은 박(朴)씨, 이름은 혁거세(赫居世)다. 전한(前漢) 효선제(孝宣帝) 오봉(五鳳) 원년(B.C 57) 갑자. 4월. 병진(일설 에는 정월 15일이라 함)에 왕위(王位)에 오르니, 왕호(王號)는 거서간(居西干)이다. 그때 나이는 열 세 살이었다. 나라 이름을 서라벌(徐羅伐)이라했다. 이보다 앞서 조선(朝鮮)의 유민(遺民)들이 여러 산골짜기에 흩어져 살면서 여섯 마을을 이루고 있었는데, 첫째를 알천양산 촌(閼川楊山村), 둘째를 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 셋째를 취산 진지촌( 치山珍支村:혹은 간진촌(干珍村)이라고도 한다.), 넷째 를 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 다섯째를 금산가리촌(金山加利 村), 여섯째를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이라 했다. 이들이 후에 진한(辰韓)의 6부가 된다. 고허촌장 소벌공(蘇伐公)이 양 산 (楊 山 ) 기 슭 나 정 (蘿 井 ) 옆 에 있 는 숲 사 이 에 말 이 무 릎 을 꿇 고 울고 있음을 바라보고 가 보니, 문득 말은 볼 수 없고 다만 커 다란 알 하나만 있었다.그것을 깨어 보니 갓난아기가 나왔다.데 려다 길렀는데, 나이 여남은 살이 되자 기골이 준수하고 숙성하 였다.6부 사람들은 그 출생이 신기하고 이상했으므로 그를 높이 받들고 존경했는데, 이 때에 이르러 [그를] 세워서 임금으로 삼 았다. 진한 사람들은 표주박을 박(朴)이라 했는데, 처음에 큰 알이 표주박과 같았으므로 박으로 성을 삼았다.거서간은 진한에서는 임금을말한다.(혹은귀한사람을부르는칭호라고도한다). (原文 : 始祖姓朴氏. 諱赫居世. 前漢孝宣帝五鳳元年甲子. 四月 丙辰(一曰正月十五日). 卽位. 號居西干. 時年十三. 國號徐羅伐. 先是. 朝鮮遺民. 分居山谷之間. 爲六村. 一曰閼川楊山村. 二曰突 山高墟村. 三曰치山珍支村. (或云干珍村) 四曰茂山大樹村. 五曰 金山加利村. 六曰明活山高耶村. 是爲辰韓六部. 高墟村長蘇伐公. 望楊山麓. 蘿井傍林間. 有馬눠而嘶. 則往觀之. 忽不見馬. 只有大 卵.剖之.有잤兒出焉.則收而養之.及年十餘歲.岐쳬然夙成.六部 人以其生神異推尊之. 至是立爲君焉. 辰人謂瓠爲朴. 以初大卵如 瓠.故以朴爲姓.居西干辰言王(或云呼貴人之稱).). 2.삼국유사:신라시조(新羅始祖)혁거세왕(赫居世王)조. ①진한(辰韓)에는 옛날에 육촌(六村)이 있었다. 一은 알천양 산촌(閼川楊山村)이니, 남쪽의 지금 담암사(曇巖寺) 방면이다. 촌장(村長)은 알평(謁平)이라하여 처음(하늘에서) 표암봉(瓢 옰峯)에 내려오니, 이가 급량부(及梁部) 이씨(李氏)의 조상(祖 上)이 되었다. (노례왕(弩禮王:유리왕(儒理王) 9년에 부(部)를 두어 급량(及梁)이라 하였는데, 고려태조 천복5년 경자(庚子) 에 중흥부(中興部)라 개칭(改稱)하였다. 파체(波替), 동산(東 山), 피상(彼上), 동촌(東村)이 이에 속한다). 二는 돌산고허촌 (突山高墟村)이니, 촌장(村長)은 소벌도리(蘇伐都利)라 하여 처음형산(兄山)에내려와이가 사량부(沙梁部:량(梁)의 훈독은 도(道)라 하고 혹은 탁이라고 쓰니 역시 도(道)라고 발음한다.) 정씨(鄭氏)의 조상(祖上)이 되었는데, 지금은 남산부(南山部) 라 하여 구량벌(仇良伐), 마등오(麻等烏), 도북(道北), 회덕(廻 德) 등 남촌(南村)이 이에 속한다. (금왈(今曰)이라고 한 것은 태조 때에 둔 것이니 아래도 마찬가지다.) 三은 무산대수촌(茂 山大樹村)이니, 촌장(村長)은 구(俱:구(仇)라고도 씀)례마(禮 馬)라하여처음 이산(伊山:개비산(皆比山)이라고도 함)에 내려 와이가점량(漸梁:량(梁)은탁이라고도씀)부(部),혹은모량부 (牟梁部), 손씨(孫氏)의 조상(祖上)이 되었는데, 지금은 장복부 (長福部)라 하여 박곡촌(朴谷村)등 서촌(西村)이 이에 속한다. 四는 취산진지촌( 치山珍支村:빈지(賓之) 또는 빈자(賓子), 빙 지(氷之)라고도 함)이니, 촌장(村長)은 지백호(智伯虎)라 하여 처음 화산(花山)에 내려와 이가 본피부(本彼部) 최씨(崔氏)의 조상(祖上)이 되었는데, 지금은 통선부(通仙部)라 하여 시파 (柴巴)등 동남촌(東南村)이 이에 속한다. 최치원(崔致遠)은 본 피부(本彼部)사람이다.지금 황룡사(黃龍寺)남쪽과 매탄사(昧 呑寺) 남쪽에 옛터가 있는데, 이것이 최후(崔候)의 고택(古宅) 이라 하니 분명하다. 五는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지금 ②금강 산(金剛山) 백율사(栢栗寺)의 북산(北山))이니, 촌장(村長)은 지타(지타(只他)라고도 함)라 하여 처음 명활산(明活山)에 내 려와 이가 한기부(漢 댔部), 혹은 한기부(韓 댔部), 배씨(裵氏)의 조상(祖上)이 되었는데, 지금은 가덕부(加德部)라 하여 상하서 지(上下西知),내아(乃兒)등 동촌(東村)이 이에 속한다.六은 명 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이니, 촌장(村長)은 호진(虎珍)이라 하여 처음 금강산(金剛山)에 내려와 이가 습비부(習比部) 설씨 (薛氏)의 조상(祖上)이 되었다. 지금의 임천부(臨川部)이니, 물 이촌(勿伊村)븡잉구미촌(仍仇彌村)븡궐곡(闕谷:갈곡(葛谷)이라 고도함)등동북촌(東北村)이이에속한다. 상문(上文)을 보건데, 이 육부(六部)의 조상(祖上)들이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다.③노례왕(弩禮王,유리왕)9년에 비로 소 육부(六部)의 이름을 고치고, 또 육성(六姓)을 주었던 것이 다. 지금 풍속(風俗)에는 중흥부(中興部)를 어미, 장복부(長福 部)를 아비, 임천부(臨川部)를 아들, 가덕부(加德部)를 딸이라 하는데,④그이유는자세치않다. 전한(前漢) ⑤지절원년(地節元年) 임자(壬子:고본(古本)에 는 건무(建武)원년이라 하고 또는 건원(建元) 3년이라고도 하 나 모두 그릇된 것이다.)3월 초 1일에 육부(六部)의 조상(祖上) 들이 각기 자제(子弟)들을 데리고 알천(閼川)언덕 위에 모여서 의논하되 “우리가 위에 백성을 다스릴 군주가 없어,백성들이 모 두 방일하여 제맘대로 하니, 어찌 덕(德) 있는 사람을 찾아 임금 으로 삼아 나라를 세우고 도읍을 정치아니하랴.”하고 이에 높은 곳에 올라 남쪽을 바라보니, 양산(楊山) 아래 나정(蘿井) 곁에 이상스러운 기운이 전광(電光)과 같이 땅에 비치더니 거기에 백 마(白馬) 한 마리가 꿇어 앉아 절하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그곳 을 찾아가보니 한 붉은 알(혹은 푸른, 큰 알 이라고도 한다.)이 있는데, 말은 사람을 보고 길게 울다가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그 알을 깨어보니 모양이 단정한 아름다운 동자(童子)가 나왔다. 기이함에 놀라 그 아이를 동천(東泉)에서 목욕시키니, 몸에서 광채(光彩)가 나고, 새와 짐승이 따라 춤추며 천지(天地)가 진 동(振動)하고 일월(日月)이 청명(淸明)한지라. 인(因)하여 그 를혁거세왕(赫居世王)이라이름하였다.(아마향언(鄕言)일것 이다.혹은 불구내왕(弗矩內王)이라고도 하니 밝게 세상을 다스 린다는 뜻이다.㉠설자(說者)는 이르되 이는 ⑥서술성모(西述聖 母)의 탄생(誕生)한 것이니 중국(中國) 사람들이 선도성모(仙 桃聖母)를찬양(讚揚)하여신현조방(娠賢肇邦:어진사람을낳아 나라를 시작하다.)이란 말이 있는 것도 이 까닭이라 하였다. (그 러고 보면) 계룡이 상서를 나타내고 알영을 낳았다는 이야기도 서술성모의 현신을 말한 것이 아닐까).위호(位號)를 거슬감(居 瑟邯:혹은 거서간(居西干)이라고도 하니, 이는 그가 처음 입을 열때 스스로 말하기를「알지거서간(閼智居西干)이 한 번 일어난 다.」하였으므로 그 말로 인해서 일컬었는데, 이로부터 왕자(王 者)의 존칭이 되었다.)이라 하였다........ 삼국유사번역자주 ①.진한(辰韓):사로(斯盧)라고해야할것이다. ②.금강산(金剛山):경주북쪽의금강산. ③.노례왕(弩禮王):사기에는유리이사금으로 되어있다. ④. 그 이 유는 자세치 않 다 : 찬자는 모른다고 하 였으나, 이 는 매우 흥미 있 는기사로 본다.마치후세촌락의「두레」와「두레」사이에탄생의선후를 따져「스승두레」「제자두레」, 혹은「형두레」「아우두레」의 구별이 있는것과 같은것이라하겠다. ⑤.지절(地節):한선제(漢宣帝)의연호. ⑥.서술성모(西述聖母):서술성모에관하여는제5권선도성모조에자세 히보인다. <註> ㉠. 설자(說者) : 삼국사기 저자 김부 식을 일컬음. 김부 식은 신라 56왕 992년을 편년체로 다 쓰고 자신의 감회를 밝힌 논왈(論曰) 조에서 그가 송나 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어느 집에서 선인상(仙人像)을 보았다며 서술성모에 관하여자세히기록하고있음. (原文 : 辰韓之地, 古有六村. 一曰. 閼川楊山村. 南今曇巖寺. 長 曰謁平. 初降于瓢옰峰. 是爲及梁部李氏祖.(弩禮王九年置. 名及 梁部. 本朝太祖天福五年庚子. 改名中興部. 波替東山彼上東村屬 焉). 二曰, 突山高墟村. 長曰蘇伐都利. 初降于兄山. 是爲沙梁部 (梁讀云道. 或作 . 亦音道). 鄭氏祖. 今曰南山部. 仇良伐, 麻等 烏, 道北, 廻德等. 南村屬焉. (稱今曰者, 太祖所置也. 下例知). 三 曰, 茂山大樹村. 長曰俱(一作仇)禮馬. 初降于伊山(一作皆比山). 是爲漸梁(一作 )部, 又牟梁部孫氏之祖. 今云長福部. 朴谷村 等. 西屬焉. 四曰, 치山珍支村(一作賓之又賓子. 又氷之). 長曰智 伯虎. 初降于花山. 是爲彼部崔氏祖. 今曰 通仙部. 柴巴等. 東南村 屬焉. 致遠乃本彼部人也. 今皇龍寺南. 味呑寺南. 有古墟. 云是崔 候古宅也, 殆明矣. 五曰, 金山加利村(今金剛山栢栗寺之北山也). 長曰祗 .(一作只他). 初降于明活山. 是爲漢댔部, 又作韓댔部. 裵氏祖. 今云加德部. 上下西知, 乃兒等. 東村屬焉. 六曰, 明活山 高耶村. 長曰虎珍. 初降于金剛山. 是爲習比部薛氏祖. 今臨川部. 勿伊村,仍仇彌村.閼谷(一作葛谷).等.東北村屬焉.按上文.此六 部之祖, 似皆從天而降. 弩禮王九年, 始改六部名, 又賜六姓. 今俗 中興部爲母. 長福部爲父. 臨川部爲子. 加德部爲女. 其實未詳. 前 漢地節元年壬子(古本云, 建武元年. 又云建元三年等. 皆誤). 三 月朔, 六部祖各率子弟, 俱會於閼川岸上. 議曰. 我輩. 上無君主. 臨理蒸民. 民皆放逸. 自從所欲. 覓有德人, 爲之君主, 立邦設都 乎. 於是乘高南望. 楊山下蘿井傍, 異氣如電光垂地. 有一白馬눠 拜之狀.尋괴之.有一紫卵(一云靑大卵).馬見人長嘶上天.剖其卵 得童男.形儀端美.驚異之.浴於東泉(東泉寺在詞腦野北).身生光 彩. 鳥獸率舞. 天地振動. 日月淸明. 因名赫居世王(盖鄕言也. 或 作. 弗矩內王. 言光明理世也. 說者云. 是西述聖母之所誕也. 故中 華人讚.仙桃聖母.有娠賢肇邦之語是也.乃至鷄龍現瑞産閼英.又 焉知非西述聖母之所現耶). 位號曰居瑟邯(或作居西干. 初開口 之時, 自稱云, 閼智居西干, 一起. 因其言稱之. 自後爲王者之尊 稱)븣). 시조대왕(始祖大王)탄강사실(誕降 事實) 2004년 준공한 일자제각,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라 하여 왕릉에는 모두 丁字 제각을 지었으나 신라는 중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여 남한의 왕 릉중유일한 일자제각이다. 뱚一.시조대왕(始祖大王)탄강(誕降). 뱚二.탄강사실(誕降事實). 뱚사서고증(史書考證 경주에서개최되는신라문화재에시조왕의탄강사실을묘사한 조형물을만들어행진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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