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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년대에는 양잠업을 수출 전략산업으로 육성했으며 1976년에는 고치 생산량이 42,0 00 톤에 달했었다.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64-1에는 사적 제83호로 지정되어 있는 선잠 단 (先蠶檀)이 있던 자리가 있다. 선잠 의식은 중국의 옛 제도를 본받아 고려 초에 시작 되 었으며, 조선 정종 2년(1400) 3월에는 이 자리에 선잠단을 축종하고 전설적인 양잠 의 창시자로 알려진 중국 상고의 황제 원비(元妃) 서릉씨(西陵氏)의 제사 의식을 지냈었다 . 또 성종 8년(1477)에는 창덕궁 공원에 채상단(採桑檀)을 신축하여 왕비의 친잠례(親 蠶 禮)를 거행하고, 선잠단에 융희(隆熙) 2년(1908)에 신위를 사직(社稷)에 배향했었는데 , 지금은 이 곳에 뽕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선잠단지’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서울시 서초구 잠원동 1-54에 위치한 잠실리 뽕나무는 1973년 1월 26일에 서울지 역 문화재 1호(지정번호 : 0001-00-00-11)로 지정되었다. 잠실이란 뽕나무를 재배하 여 농민들에게 시범을 보이던 조선 왕가의 잠소(潛笑)를 말하며 잠실이나 잠원동이란 동 네 이름도 여기서 유해했다. 한강변에 남아 있는 오래된 이 뽕나무는 이미 죽었지만 조 선 초기의 나무로 알려져 있어 유서가 깊은 문화재이다. 3. 모섬유 고대 이집트에서 아마 직물이 일찍부터 발달했으나 양모의 착용이나 양 사육의 지리 적 여건은 적절치 않았기 때문에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양모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8000년 전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목축지이면서 고대 문명 발상지 메 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은 산양 같은 동 물들의 털을 모아 세탁을 한 후 젖은 상태로 넓게 펼쳐 놓고 돌이나 나무방망이로 두들 겨서 펠트 상태로 만들어서 옷이나 이불로 사용했다. 기원전 3000년경까지는 이와 같 이 양모를 펠트 상태로 만들어서 직물로 사용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후 양의 사육은 지중해를 건너 페니키아와 그리스로 전해짐으로써 유럽의 양모 역사가 시작되었다. 고 대 그리스인(아카이어인)들은 양모를 깎아서 실로 만든 다음 손으로 짜서 훌륭한 모직물 을 만들었다. 이 당시 그리스는 아마 생산은 매우 적어 이집트에서 수입을 했었고 견섬 유는 아직 알지도 못했던 때였으므로 양의 사육과 모직물의 생산은 생활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리스 면양의 흐름은 로마로 이어졌고 로마가 멸망한 다음에는 스페인의 목축이 크게 발전하였는데, 바로 이때 고급 의류용 원모인 메리노 품종이 개발되었으며 연대가 분명치는 않으나 12세기경으로 보고 있다. 메리노 양은 스페인의 왕실이나 귀족 또는 승려들의 소유였으며 메리노 양의 소유로 부귀를 누릴 수 있었기 때문에 외국으로 의 수출을 철저하게 금했으며 만일 메리노 양을 단 한 마리라도 나라 밖으로 반출하면 제1장 섬유의 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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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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