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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앞서 설명했듯이 오래 전 우리나라에서는 의복의 소재로 주로 삼(森)을 재배했다. 몰 론 비단옷도 있었고 짐승들의 가죽옷(갖옷)도 있었으나 값이 비싸서 서민들은 이용할 수 없었다. 베옷은 여름에는 시원했지만 겨울에는 추위에 떨어야 했다. 1363년 고려 말에 문익점이 원나라부터 목화씨를 들여와 면의 재배가 시작되었고, 목면옷을 입게 된 이후 목면 솜옷으로 서민들도 따뜻한 겨울을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합성 섬유의 보급으로 의 생활이 풍성해진 오늘날까지도 가장 실용적이고 위생적인 의류 소재는 면섬유이다. 2. 견섬유 견직물은 기원전 2640년에 중국의 황제비인 서룽씨가 남편의 옷을 지을 때 처음으로 사용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로는 기원전 1170년경 중국으로부터 양 잠 기술이 전해졌으며 구미로는 주로 16~17세기쯤에나 전파되었다. 중국 내에서도 비 단은 금과 동일한 무게의 값으로 거래됐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매우 비싸서 평민들 이 사용하기는 어려웠다. 오랜 기간 동안 중국의 양잠 기술은 서양으로 전해지지 못했 으며 서양 사람들은 중국의 비단을 단지 신비스런 천상의 섬유로 인식하고 비싼 값을 주고 수입해서 사용했었다. 19세기 말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디난트가 중국과 서양을 연결해 왔던 모든 교역로를 통칭하여 Seiden Strasse(Silk road, 비단길)라고 이름을 붙였으며 이 명칭은 널리 전 파되었다. 비단길의 기원은 로마인이 비단을 알게 된 B.C. 1세기부터 극동아시아와 유 럽 사이에 무역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생겨났다. 로마인들에게 비단은 옷감의 질도 신비 했지만 신비에 쌓여 있던 원산지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더 인기를 끌었다. 중국과 서양 사이에 교역이 이루어진 산물은 향료, 종이, 도자기, 보석 등 여러 가지였지만 비단은 기록에 남은 최초의 교역 상품이다. 쇠락해가는 로마에 사치 풍조가 한창일 때 로마인 들을 매료시킨 비단은 매우 고가였지만 유행 상품으로 급속히 퍼져 나갔다. 세네카나 플리니우스는 비단의 수입으로 인한 막대한 재정의 지출이 로마제국의 쇠퇴를 재촉하는 원인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으며, 로마 원로원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쳐 값비싼 비단 수입 을 금지하기도 하였으나 시정되지 못했다. 비단길은 산물들을 교역했던 통상길일 뿐 아 니라 동서양의 학문, 종교, 기술, 문화가 상호 교류되었던 통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단군 조선 때(4300년 전)부터 누에를 치기 시작하였으며 삼한시대, 삼 국시대,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양잠업을 장려하였다. 삼 국시대 초기인 백제 초고왕 때는 누에치기와 직조법을 일본에 전파하였다. 조선시대에 는 왕비 친잠예법을 제정하고 잠실도회를 설치하는 등 양잠업을 적극 장려하였다. 1960 제2절 섬유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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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견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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