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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부산을빛낸인물(Ⅰ) 240 없다.”라고대답하자서장은“카사마야메(이새끼집어치워)”하 면서자리를박차고일어났고좌담회도해산되어버렸다. 이일이후한상동목사는교회일을전폐하고매일마산경찰 서에출두해야했다.40일간하는일도없이우두커니앉아있다 가밤중에귀가했고,다시아침에경찰서로가는일만을되풀이 했다.한상동목사는교회의장로와집사들이자기때문에고생 을하고있어1939년3월문창교회목사직을물러났다. 그해4월한상동목사는농우회사건으로구속되었다가풀려 난주기철목사를찾아갔다.그리고그곳에서채정민,오윤선,이 광록,방계성,안이숙,박의흠,김의창,최봉석등신사참배반대 에뜻을같이하는동지들을만나게되면서조직적인신사참배 반대운동에참여했다. 그는이인재,주남선,최상림,손명복,최덕지등과함께경남 지역신사참배반대운동을조직적으로추진하였는데주로부산 과밀양지역에서활약하였다.1939년10월경밀양마산교회에시 무하면서본격적인신사참배반대운동을펼쳐나갔다. 그러던중1940년7월전국에걸쳐신사참배반대운동자들이 검속을당할때한상동목사도천황에대한불온분자로몰려검 거되어경상남도경찰부유치장에구금되었다.구금되어일본경 찰의잔혹한고문을받으면서조금도자신의신앙을굽히지않 았다.그후1941년평양종로경찰서유치장에서주기철목사와 극적인상봉을하고1개월동안심문과고문을당하다가1941년 7월10일평양형무소로이감되었다. 한상동목사는평양형무소에서고문으로고통을당하면서도 굳게믿음을지켰다.그는일본천황께충성한다는말한마디면 풀려날수있는기회도많았다.그러나나는하나님께충성하는 일외에는여념이없는사람입니다.라고말하며끝까지일제에 저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