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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마을 동쪽 동내는 함덕에 서쪽 동내는 조천, 두 마을에 예속되어 수백년을 자유롭지 못하게 지내오고 있어 이를 통탄한 김성화 공이 동리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차라리 "닭 주둥이는 될지 언정 쇠꼬리는 될 수 없지 않느냐"라고 말하며 우리 마을은 인재도 많고 해륙의 산물도 많은데 자치를 못하고 강한 이웃에 제재를 받으니 어찌 부끄럽지 아니한가 라고 말하며 분향 독립하여야 할 당위성을 설명하니 이에 모두 동의하여 당국에 진정하는 등 투쟁하여 분량 독립하였으니 이 날이 갑인년(1914년) 11월 22일(양력 1915년 1월 7일)이다. 마을 이름은 새로 이르킨다는 뜻을 담아 신흥리라고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