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之國、護守禮義、뽕自甲午 日本홍獲朝解、以通貨開化之說、互相引接、至康않七月 二十五日竟逢我君餐我國夫日本多許多變之國也、以義價德習、尙以劉據薦長技、 列國之所共排擊者也、以我失君失國之人、深有塊於憐國之視聽 、而事至此境、不可不 呼訴於天下故、雖無子頁之辯、包품之誠、而찮陳願末、望須特 推廣救之義、聲討遍賽 之罪偉之歸正、如案之救楚、吳之救醫、如何以貴國威力、制日本之橫暴不過驚 手投足之勞、而若不及此防獲則、彼將轉然有大欲於天下、必、 途醫食之計훗、貴國-亦何 憂然而E乎、秉憲今日之論、짧楚亦짧趙也、濟弱技碩、義理所當然、情急狂號、 不 知所載。 / 參考 @차공(子頁)---孔子의 弟子로 言辯에 能함 。 「宰我子頁善뚫說離」 @포서(包품)---申包톱는 戰國時의 楚人이니、rm 子톱의 친구로서 子몹의 아배치 총가 楚平生에게 被殺되자 子톱는 吳에 逃t 가서 吳의 援兵을 얻어 楚軍올 擊破하고 「發平王훌 觸 F三百」申包톱는 奏에 가서 救援을 請、하는데 六日풍‘안을 庸哭하여 哀 訴하여 奏兵올 이끌고 돌아와서 吳軍을 盤破했다는 故事。 청국、러시아、영국、 불、란、서、에 보내는 펀지 書 옛부터 천하를 고루 나누어 각기 맡아서 다스려 왔으묘로 추(鄭)、와 노(흉)같은 작은 나라이냐 춘-주시대(春秋 時代)의 、전、란기(戰亂期)에도 추로(鄭흉)에 、전화(戰福)가 미치지 않는 것은 공맹(孔굶)의 유풍(遺風)이 남아 있 어서 모두들 그 예악운물(禮樂文物)파 헌장법도(憲章法度)를 홍선하、여 뒷세상에 법칙이 될만하기 혜문업니다。 우리 조선이 동방의 -주로(鄭흉)의 나라로서 삼강오륜(三網五倫)을 카르치고 제가치국(齊家治國)하는 도(道)를 지켜 착하고 밝우신 임금이 대를 、이어서 건국이 오렐수록 더욱 새로움이 있었는데 뭇밖에 알본、이 우리 、강토를 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