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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 는 아니 이것만은 참아서는 아휠랴는 표義感이 그대로 紙面에 옮겨진것이 곧 長書、鐵文、警告、聲討등등이다。 「원수를 갚기위해 史筆을 멈-주지 않는다」(欲報君普 不停史筆)「揚柳木」 「백천、먼 、장서해서 기어코 복국하리라」(百千畵長書 期乎復君國)「憲兵과의 問答」 「정의 앞세워 적을 성토할 때 붓파 혀를 함께 쓴다」(據義討購 以筆以눔)「竹柱銘」 이로 불 해 先生에 있어서는 文章이 곧 節義며 抗爭이며、또 生活의 全部였던 것이다。 이밖에 法廷抗辯을 바롯하여 問答辯破또는 嚴正痛烈하여 響願의 不義를 痛罵하고 民族塊을 煥起하고 抗敵意 識올 鼓吹하、여,꿈속에도 잎지 뭇한 討復 i 念응 「夢戰優兵」의 記事로도 알 수 있다。 이 끈절긴 抗爭응 온갔 齊威와 追害를 무릅쓰 고 長長十四年에 걸쳐 無批抗不服從。 -로 一 實하 여 마침내 徵中 에서 自決하면서까지 죽어서 動鬼되어 觸을 무찌르고 말겠다는 決意그대로 「내 聚의 祝文에는 빼빼盡蠻頭 換回國 隊」A로 祝文올 고치라고 遺言하였으니、이忠節!이뾰烈!·이것이 바로 正氣 의 짧露이며 貞忠의 權化이다。 數많은 義烈先生들의 이러한 精神이 뒤이어 일어난 一三義學의 獨立精神A로 昇華 되어 마첨내 一 九四五년 가 을 光復의 榮光된 나 E 을 마지하게 된 것이다。 이제 원수 물러간 이 땅의 하늘 밑에서 先生의 義置 을 낱낱이 빛내기 위해 紀念事業이 次第로 邊行되였고 遺 橋또한 새로 刊行함을 즈음하여 냐에게 國譯을 부탁하묘로 敢히 이 붓을 둔 바이나、先生의 精忠大節이 피눈물 로 點總된 警世의 文章을 世洛글로 移譯하기、란 極히 힘들뿐 아니라 簡顯雄澤한 漢文本來의 맛을 나타내기는 더 욱 어려운 바이나 오직 原文에 忠實하여 보」뜻을 揚陽하지 않도록 힘쓰며、故事成語에 註釋을 加하、여,讀者의 理 解를 도 H 케한 바이다。 행、여나 이 抽譯이 先生의 높으신 風節을 理解하는데 도움된다면 실로 다행무로 여걸 것이다。 一 九七八年二月質城李 ‘源亂삼가 씀 曉松遺橋卷之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