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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 여 生命을 유지한들 크게 義에 어긋나표 것 없을 터안데도 祖國의 빼았김을 원봉히 생각하고 同뼈의 의지할꽂 없 음을 슬퍼하여 ,ZE 로부터 찌午년에 、이르、기까지 十四年동아 T저 소위 왜적이 恩金A 로 유-혹해도 꾸짓고 안받。「벽 納鏡를 명령해도 꾸짓고 안바치고 幕籍하라 위협해도 꾸짓고 않했。?며 酒脫法위반。-로 구속해도 역시 꾸짓、어서 숲힘이 없어서 前後、세차례에 、걸처 체포되어 마첨내 大邱감옥에서 자결하면서까지 아들에게 유언하기를 「내 제 사날의 祝文에는 반드、시 오랑캐의 머리를 씹어 다해서 나라 운수 회복하겠다···爛盡蠻頭 抽며國뼈」의 여넓字로 처。작(淸動)귀、경 C 에 대신함이 可하다 하셨다。아!이다지도 밤烈하신지고 先生응 참으로 뭇 새중의 봉황이시며 1 온갓 물건 중의 호련이시다。이 어찌 天性에서 타고나 X 다 안하겠는가。先生이 서거하신 -푸 二十八年ζ西가을、에 하늘이 禮를 뉘우치사 大戰이 끝나고 왜석이 항복하자。우리 땅이 다시 회복하게 되니 이것이 모두 義烈이 先生 같은 분들이 피흘려 、항쟁하고 싸우신 덕댁 아넙이 없는지라 우리 동포가 오늘날을 당해 이 점에 감탄하、여 뒷 세 상에 권장하-℃것을 도모하지 않는다면 어쩌 、떳떳한 성품이 없어지질 않했다 할 것이며 벌、레와 다르다 할 수 있겠 는가。、이것이 바루 버宗義齊를 지어서 여러 선버들이 先生을 봉안한 까닭이다。증손 學鍾이 여러 선비의 축하하는 詩를 모아서 한 책자를 이룩하여 나에게 맺음말을 부탁하니 學鍾兄역시 어진 분이라 하겠노라。재사가 演용의 江律에 있으니 吉治隱의 採織亨파 五里남짓한 곳에 있무니 밝으신 英靈께서 함께 찍하여 여。‘원한 맑은 바랑 쏘 이며 노‘실줄 아노라。 硬松遺橋卷之七 여申 겨울 順天金喆熙는 서울 否花館에서 삼가 이 그 E 을 쓰 n 벼宗 義驚詩 貼뼈없 物各有i 定之性、쿄據不可以作期鍵也、壞멸不可以化蠻團也、若或化而作之 也、驚鳳 之可獨德瑞쩌、而湖鍾之可獨德美器乎、義人烈士、·亦性也故宋 之文信國、高麗之鄭文 忠、獨樹美成仁、而卓乎千萬人之上者也、往在帝韓之末、不幸而 웹身짧國者 1 有不可 以一二數、而若劉硬松譯秉憲先生、以其位則、不過德 i 個草뽕士也、比文鄭兩相之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