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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빼핸야뻐遺혈빼 卷t 陳松遺橋卷之七 附 錄 기념、비문 (紀念牌文) 광무(光武)九년 7μB 에 이른바 보호조약이 맺어지、매 선생은 도척이 방안에 들어와서 그 집을 보호하다니 듣 도 보도 뭇한 노릇이라 하 셨A 니 선생의 、항석(抗驗)은 지를{이혜부터라 할지니라。융희(隆熙)四년 켜。술(康或) 에 실국의 큰 변이 생긴지라、선생은 북망 통곡하고 한동안 절식 끝에 다시금 비극어나 、이마 구차히 살기도 싫。­ 려니와 또한 한갓 죽어、버리기만도 않으려}다 하고 이내 오척(五願)올 성죄(聲罪)하、여,일본내각과 총독부에 격 (鐵)하는 동시에 미·청·노 ·여。.‘법(美淸露英法)등 여러 나라에 달을 보내어 왜적의 죄를 통격하시니라。이에 왜졸은 갖은 유혹과 위협A로 나중에는 이른바 은사금(恩陽金)은도 선생의 돗을 겪으려 하 、 었건만 선생은 욕되다 하여 끝내 거、경亡하시고 은수변파록(恩響媒破錄)올 지어 통척하시니라。켜。술 가울에 왜정의 세금을 거부타가 신해 十월 마첨내 총독부의 심문을 받으니 선생은 오랑캐들은 나를 죽이 E 뿐이라 하고 목을 가리키면서 대갈하셨나니 라。그러하여 대쿠옥은도 돌아오 ‘ 신 후 마침 원단(元日一)을 당하여 옥중의 수천명이 모、인 자리에서 선생은 큰소리 로써 왜적의 만행을 성토하시고 나라 원수를 설치뭇함이 원한이요、겨레는 협、심하여 조국광복을 성취하는 것이 소원이로라고 경고하시니 만장은 바분 강개의 눈물을 흘리었고 옥밖에서도 수백명이 엿듣고 크게 감동한바 있었 냐니라。이로써 선생은 갖은 악형올 당하였으나 더욱 준열하게 적을 노매(恐罵)하신지라、저들도 마침내 백발가 삭(白髮可創)이나 단심난탈(파시心難養)이라 하고 석방하기에 이르렀니라。엄자(王子 一 九一二)十一 월 六얼 또다 시 대쿠옥 투옥되셨고 무오(찌午 一 九一八)정월 十二일에 삼차로 투옥되셨으니 이혜 ‘법정에서 선생은 내 쌀로 내 술을 빚었을 뿐이라。다만 너의 왕의 머리를 베어 내 술잔을 만들지 옷함이 한스렵다 하셨나니라。이혜 선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