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5page

南쪽에 一 千사람 전송받아 義士우덤 이룩하다。서(序)하기를 公의 宇는 周顯이오、號는 硬松이니 본판(本實)은 江擾이라 文熺公창(敵)의 十六世孫이시다。祖父는 우동(遇東)이오、아버지는 익원(蠻源)이며、어머니는 張民이 다 헌종(憲宗)王寅(一 八四二)에 出生하니 뭇과 기사。이 영매하、역 사기(史紀)를 읽을 해 忠톰과 烈士의 사적에 대해서는 거듭 감탄함을 말지 않더니 康成七月(i 九一 O) 에 합방했다는 소식을듣고 北녘을 향해 통곡하고 五 購의 죄르븐성토하는 글을 지어 城市와 걸거리에 게시하였고 왜적이 노인들에게 돈을 보、내어 恩陽金이라 해서 거 부하면 화가 미첨에도 公이 은수변파록(恩響辦破錄)을 지어서 되돌리니 、저들이 여러먼 와서 위협하、매 公이 말하 기를 돈이 우리 나라 돈 아니고 우리 임금이 주신 돈이 아니니 무슨 은혜란 말이냐。꾸짓고 물리치다。가을이 되어 왜안이 國鏡블 걷우매 公이 거부하기를 우리 임금에게 바처야 될 세금을 개돼지의 나라에 보내겠느냐。왜 적이 압송하여 若木에서 大邱를 거쳐 總督府에까지 가서 여러 가지로 、심문 곤욕이 자심한지라 公이 크게 꾸짖、기 를 「개돼지 같운 놈들 왜 나를 속히 죽이지 않느냐?」왜적도 마침내 굴하지 않음을 알고 「白髮은 깎을 수 있。­ 나 붉은 마음은 빼앗기 어렵다(白髮可創 판心難쫓)이、란 여밟 글자를 써 주어서 석땅하다。日本法에 田地에는 포 목이 있고 무덤、에는 요적이 있는데 公은 따르지 않A으로 王子(一 九一 二)년에 이로 안해 수감(收藍)되어 석달만 에 나오、매 문을 닫고 몸을 삼가서 時局말을 할 ‘때는 悲慣의 눈물이 。}갓깃을 、적시어서 왜적의 모든 法은 낱낱히 반대하였는데 여午(一 九一八)년 봄에 酒鏡法違反、과 그 외의 범죄를 들어 저들이 와서 공갈하매 公이 구짖기를 「내가 내술을 빚、었는데 무슨 참견이냐?·너희 임금의 머리를 베어 술잔을 뭇만듬이 유감이다。」이로 안해 또 투 훌홍 5홉 짧 옥되어 七개월만에 철명시(總命詩)를 짓고 자결하니 七月二十日이다。영쿠(靈樞)가 돌아오매 걸가는 사람이 눈 물흘려 조、상하、며,士林들이 모여서 장사할 때 義土로 명정을 쓰다。아!義란 것은 사람이 하늘에서 얻은 것은도 나타나서 事物을 처리할 해 마땅함이 되나니 天地와 강상(網常)도 義아니면 서、지 뭇하고 中國과 오랑캐의 구별 、과 사랑과 짐승의 다름이 義아니면 판별할 수 없。「니 지금 天地가 폐색되고 網常이 끊、어졌다。中國、이 오랑캐 되 었고 A類가 짐승되었오냐 天下사랑이 東國에 劉周顯義土가 義를 위해 옴을 바쳤다는말을 들우면 우리 東國도 자라으말、만할 것이다。公의 夫A은 야성송씨(治城宋民)廷權의 、짜념이다。長男운 洪烈이오、次男은 興烈이니 양자 3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