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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금지하니 관청에서 크게 놀래서 독촉하기를 더욱 심히 하니、公이 말하기를 「어찌 우리 임금에 마땅히 바쳐 야 할 세금을 원수에게 줄 수 있A 리오」一 年을 시드는 동안에 都守가 두세、번 와서 「地脫만 바치면 나머지 雜脫 는 모두 면제해도 좋다는 道廳의 지시가 있£니 고려해 달라하며 만약 그렇지 않A 、면 큰 화가 올 것이라」했으 나 끝내 거부하다。 辛玄(一 九一一 )十月에 구속되어 總督府에가서 심문을 당하매 公이 소리질러 꾸짓기를 「개 돼지같은놈들아! 속히 나를 죽여라。수다스리 물을 것이 무엇이냐?다시 大邱감옥에 갇우어져서 곤욕이 자심했으나 언사가 더욱 격렬하므로 왜척도 끝내 굴하지 않을 것을 알고 「흰머리는 깎을 수 있£나 붉은 마음은 빼았기 어렵다」는 글올 써서 석망하니 시직(待直)李學宰가 詩와 글을 지어 그 忠義를 격찬하니 士大夫들이 듣고 화답하다。 王子(i 九=;년 겨울에 田地에 랫말을 세우지 않은 것과 幕籍을 하지 않았다 해서 또 쿠속되어 석달만에 풀 여오다。이로부터 문을 닫고 外人과의 교제를 끊었으나 時事를 말할 해는 눈물이 흘러 옷깃을 적시며 까 다 로 운 정치에 대해서는 알체 반대하다。 찌午 ( i 九一 八)正月에 주세법위반(酒脫法違反)은도 다시 체포되었을 해 法廷에서 크게 꾸짓기를 「내 쌀로 내 339 술을 빚었는데、너가 무슨 참견이냐。네 임금의 머리를 베어 술잔을 뭇만듬이 유감이다。」또다시 下歡되、어 七개 월만에 絡命詩를 짓고 옥중에서 자결하니 七月二十日辰時、이다。영쿠가 고향으로 갈 때,길가에서 보는 사、랍이 모두 눈물흘려 탄식하고 상점에서 부의하고 배사공이 선가(船價)를 사양하였고 두달 후에 首陽山甲坐康向에 、장사하니 회장하는 사랑이 수천명이 넘었다。、명정에 義士로 쓰케 하다。 夫A은 야성송씨(治城宋民)니 정권(廷權)의 따넙이오、충숙공 회규(希奎)의 후손이다。四남매를 낳으니 男은 洪烈인데 글공부하여 志行이 있고 興烈은 季父앞A로 양자가고 女는 玉山張完相과 廣州李相爆이오、洪烈의 男 은 載淳과 載和며 女는 張祐鉉、宋鴻圖이오 나머지는 기록지 않는다。 公이 굳세고 의젓한 자질로 고요히 마음을 쏟아 공부하여 몸소 닦아 家慶에 실시하 E 이 모두 근본이 있었。-냐 @ 不幸히 세상이 환판되는 혜를 만나 버풍하천(展風下果)의 슬픔에 억압되어 감옥냉굴에 드나드는 액운을 다。해 아 狀 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