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0page

338 다.仁同의 劉義士가 곧 그 한분이시마。義土의 휘는 秉憲이오、字는 周顯이니 江陸劉民로서 玉川府院君文뽑 公께서 開國名톰。-로、太宗大王께서 「公心 一 視」라는 네 글자르븐써서 포상하신 바 있고 緊間書院에 모셨으나 지금운 書院은 철폐되고 영정각(影順聞)을 세워서 해마다 제사지낸다。증조(曾祖)는 수성(秀成)이오、祖父는 우 동(遇東)이시고 아버지니 익원(覆源)이시니 모두 숨은 덕이 있었고 生家조부는 우석(遇錫)이오、號는 漢亨이니 孝子로 이릎、난 분이시니 옛말에 「忠百을 孝子의 집에 찾으、라」는 말이 허언이 아니로、닥。、어머니는 玉山張民니 세 、관(世灌)의 짜나 n 이다。 憲宗王寅(一 八四二)에 上江里에서 出生하니 다고난 자질이 -종며。하여 成長함을 따라 竹下公장석목(張錫樓)에 게 글을 배워 고、심연구하여 그 E 솜씨가 날로 진보하였고 항상 古今의·忠百과 烈士의 사、적을 강론할 혜는 바분、강개 하、여 단식하、여,、말지 않았다。어버이를 셔믹기매 、컵을 、닥스럽에 ‘법도 있。g l 더우기 조‘상 위한 일에 @홍松遺橋卷之六 효를 마하고 힘써 훌훔公의 -효행을 영문에 진정(陳情)하여 ·文熺公의 영정각( 影娘 聞)을 지어 어필(細筆)올 奉安한 알들이 모두 公의 誠意에서 나온 것이다。담박하여 명예와 이익에 마음을 쓰지 않고 남의 착한 일을 들A 、면 、반드시 찬양하고 남의 허물 、있음을 보 고는 -중고하는데 ; 사정이 없으시다。이 E 、찍 l 말하기를 「선비 가 만결(曉節)을 보전함이 소중하다」하、여,陳松 A로 號하다。 ‘갑오(一 八九四)년 이후로 섬오랑캐가 화친하기를 청하여 우리 나라를 보호하겠다 하매 公이 개연히 탄식하기 를 「도、적을 바。、안에 들어오게 하여 그 、칩을 보호한다는 말을 듣 지 뭇했노라」康成년에 합、방(合郭)이 되자、公이 여러 나표 동안 통곡하다가 와락 일어나서 말하기를 「내가 죽겠으나 항】 1 일은 하고 죽자」이에 五願의 賣國한 죄를 낱낱이 들어 성토문(聲討文)을 만들어 각 고을과 시가에 게시하니 왜적이 심히 분노‘했 A 나 民心을 선동할까 두 려워하여 憲兵을 、파견하、여 、번갈 아 감시하고 온순한 、말로 -효유하나 公이 큰 소리로 꾸짖어 물리치고 國內의 、벼슬 아、치와 선바와 노안에게 恩陽金을 주게하매 公이 은수변파록(恩響辦破錄)을 지어서 물리치며 말하기를 「돈이 우 리나라 돈이 아니고 주는 분이 우리 임금 아닌데 내 어찌 받겠느냐?L 憲兵이 백가지로 효유하고 협박했A 나 公 이 한마디로 거、결하였고 경찰과 那守가 왔우나 또한 이같이 하였다。이해 가을에 자제(子弟)에게 納脫를 뭇하도 포‘상을 받게하고 마음 가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