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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4 를 쓰고 護以밑에 작진만두 만회국맥(爛盡蠻頭 擺며國隊---오랑캐의 머리·씹어 다하고 나라운수 마시 돌린다)의 八字를 넣어 청작서수(淸動應훌)의 글귀에 、대신하라。七月이 되어 가 봐오니 總食하신지 、이미 수일이기로 不뽑 가 울면서 食事드시기를 청하니 府君께서 「君子는 사람을 덕(德)은도써 사랑하고 小A은 사람을 사랑하는데 그 혜 그‘때의 형펀 따라 한다 하지 않았느냐?·、녀는 더 말하지 말라」마침내 이달 二十日辰時에 자결하시니 壽는 七十七세시다。여판에서 습(題)과 염(敬)올 하였는데 품안에 、정-명시(總命詩)가 나오다。 ‘영쿠( 靈根)가 고향으로 돌아오매 市民들이 自願해서 상、여를 메었고、점포에서 음식대를 받지 않았으며 배사공 이 선가(船價)를 사양하더라。士林들의 조객( - 市客)이 수천명이나 되었는데 朝蘇義士라고 며。정 써서 首陽山甲坐 康向에 장사하다。배위는 야성송씨(治城宋民)니 야계선생(椰漢先生)希奎의 후손이오、廷權의 、와넙이니 揮德을 갖추어서 시父母를 효양하고 남、판을 、잘 、받들었 A 、며 二男二女를 기르시니 男은 不혐 洪烈이오、興烈。 τ 季父에게 양자 나가고、女는 玉山張完相파 廣州李相爆이며 洪烈의 男은 載淳과 載和며、女는 張佑鉉이오、興烈의 男은 載壽와 載斗며、女는 金定東이오、냐머지는 기록하지 않는다。府君이 성품이 강직하고 지 E 햇함이 정도 「하여 창졸 에 일을 다。하여도 창황한 빛이 없고、-홀로 있을 해도 태만한 얼굴을 하지 않으며、남의 착한 일을 들으면 즐겨 서 찬양하나、義에 、어긋나는 사람은 비록 친교냐 세도집이라 해도 낯을 대해 꾸짖고 펀지로 책망하、역 조금도 용 서함이 없이 、반드、시 후회하고 깨닫게 하고 말았흐묘로 남들이 모두 공、경하고 두려워했다。 平素에 지온 詩와 그 E 이 심히 많았으냐 康않년 이후로 모두 내어서 불사르고 말하기를 「나라 망하고 임금 욕당 하는 혜에 내몸도 보、전 뭇하는데 원고(原橋)두어서 무엇하리」백벤이나 長書하고 、세、번 카n 옴에 들어가서 마침내 義를 取하고 仁을 이루어서 、변란(變亂)속에서 、강상(網常)을 부뜰었A 니 홀로 얻어 홀로 실천하여 千萬世에 뻗 치도록 나 n 들이 무엇、이라 해도 돌보지 않는 바이다。義를 앞세워 왜적을 성토한 글을 不혐가 보는대로 、기록하여 가만히 간직한 바、이나 、어느때 세상에 나타내어 썩히、지 않을는지 알 수 없£나 不肯도 냐이 쇠하고 돗이 해이하 여 餘生、이 많、지 뭇하니 혹 하루 아첨에 목숨、이 다하、여 찾을 곳이 없을가 두려워하여 이에 감히 、대략을 적어서 혀。필하는 、어른의 참고가 되게 하노라。 硬松遺積옳之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