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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筆關上橫文、每與鄭憐諸友、同處竹下빼鐘之下、春夏講詩經 購洛、秋多讀春秋史漢 而 庸學術義、八家精要、醒而習之、春日麗明、與冠童數十人、暗뼈 ·文階西山、風味而 歸、登緊圖書院、講論經義、繼行鄭餘酒禮、又합東洛講會、新갑 洛商張公德講長、自 通史至七書、隨所讀而講之、金- 論義經擊離、有疑問答、登天淵臺不知嚴、想꽤雄줬 之遺題、如在春風之席、不知今古之遠也、朱以推醫之質、租 分魚舊者、乃竹下옳敎導 之力、而竹옳之學 郞旅컸之學也、以忠孝짧本、服鷹久훗、今江山陸況、網常倒地 、 此政忠百義士、位血雪層之秋也、所以失心廳他、決志報뻐싸 應或不負빼鐘提命之義耶、 記以械兒費因以自警一길爾。 硬松遺橋卷之二 현시대의 학자를 경계함 @ 대저 사람이 배운다는 것은 효제-중신(孝爛忠信)을 、떠나서 없을 것이니 요(옳)임금이 구족(九族)을 친하게 하 @@@ 고 순(舞)임금이 오품(五品)을 、명했。-、며,우(禹)임금은 오、전(五典)을 베푸시고 탕(揚)임금은 극충(克忠)함을 -- @ 고 문왕우왕(文王武王)은 달효(達孝)가 있었우며 1 공자(孔子)는 충효(忠孝)를 가르치시고 맹자(주血子)는 오륜(五 倫)을 밝히시니 천고 (千古)의 성현(聖 賢)의 학문이 충효(忠孝)뿐이다。、집에서는 어버이를 섬기고 나아가서 임 금올 섬겨 、경우에 따라 그 도리(道理)를 다하나니 이로 미ET 、어 천만가지 일이 충효에서 울어나지 않는 것이 없 다。우리나라가 선비의 기풍을 길러서 사도 (斯道)를 강명(講明)하여 나라가 다스려지고 교화(敎化)가 이루어져 서 나라가 위급할 때에도 잘 지쳐 왔으 무 로 동쪽 한「 T 석에 있 o 「면서도 중국에 뭇지않게 태산 바」석같이 안전하게 지켜왔、기로 옛날 임진왜란을 다。하、여,팔도 (八道)가 어,육이 되어 위급함이 비갚、때 없었A 、냐 산골에 묻혀있、던 、선버 들이 앞을 다투、어 일、어나서 의뱅을 이르켜 사생을 하늘에 맡기고 오직 -중성을 위해 싸웠기에 마침내 적은 무찌 르 고 사직(社樓)을 보、천했 A 니 이것이 곧 -효돈을 -중성우로 옮긴 보람이다。지금 왜적이 교활한 술책우로 우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