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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세‘상에 공、경대부(公獅大夫)로부터 미천한 백성들까지 모두 화를 접내고 위력에 눌려서 왜、적,에 굴복하는데 홀 로 선생께서는 초야(草野)의 선바로 은사금(恩陽金)을 물지치고 납세를 거부하고 왜석을 꾸짖、어 굽히지 않고 옥 중에서 혹독한 형벌을 받。-、면서도 -후령이 서릿발 같A으로 저들도 또한 선생의 -중외에 감동되어 석방하였A 、며, 또 남몰래 선생의 사、진 A 르찍어 저희들 임금에게 、전달했마 하니 이것은 천하사람이 다 아는 바이닙니다 。 참A 로 자。 하신 일업니다。」답 - --「왜석을 성토한 글은 쓴 일이 있A 나 사진 찍은 얼음 알지 뭇하는 일이외다。」 중---「소승이 비록 깊은 산중에 있으나 사방을 돌아다녀서 선생의 사적은 자세히 들었£、역 또 타고난 성품은 유불(橋佛)이 다 를바 없아오니 임진왜란때 충신의사(忠百義士)가 곳곳에서 일어나쏘 E 때 사명대사(때 、멸大師)가 중의 폼으로 의병 에 종사하、여 왜적을 토、멸하여 항복바 E- 뉴데 협력하였으니 중도 또한 국가에 도움 、안되는 것、이 아니닙니다 。 소승、이 바록 완악하고 、어리석무나 、어진 일을 즐기고 정의를 사랑하는 마음은 옛사람에게 야 O 보하지 않으묘로 수백리 길 을 발섭하여 높무신 、 젤의를 차하(致賢)드러러 온 것입니다。」답-- - 「파분한 치하를 내가 어찌 당하리오 。 다만 존 사( 尊師)가 나에게는 마치나 태전(太 鎭)과 창려(昌 察)같。-며 문창(文陽)과 여。숙(永많)같응 관계안데 서로 보 게 됨이 늦은、게 한이외다。 」중-- - 「태、전파 문창은 시문(詩文)을 잘했으냐 소승응 하나도 능하지 뭇하니 하감이 바 유가 되겠읍니까?」이어서 작별하는 말이 「마음 만날 、기회는 자-죽(子표)년에 있을듯 냐랍니다。」이릎과 후(號)를 물으매 머리숙안채 말없이 글 한수를 써주기를 「필력이 아、직 강건하시니---(筆力尙康健)한북성을 회복하리라--­ (能回漢北城)푸른산 밝은달 아래- - -(좁山明月下)진정을 토로할 、날 있으리- - -(뿔不만質情)답---「내 대사를 잊지 않을터니 、대사도 날 잊지 말게。」 著 金剛山增問答王子五月十四日 雜 朝有繹然老納、手持魔竹校、項掛百八念珠、上堂合掌而拜、金問 從何處來日「小增 ·在金剛山、盛聞先生之卓節高義、當今之世、自公聊至짧應、莫 不休福뿔威、趣走於優 而獨先生以草쫓童布、돼金租脫、罵購不屆、至於固圖醒제之日、 號令如嚴露、彼亦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