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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4월30일 토요일 7 (제112호) 관향조 종친회 1578년 율 곡 이이, 중봉 조헌, 토정 이 지함, 구봉 송 익필 등과 하 늘의 장성(長 星 ) 을 보 고 돌아올 국운 을 논의하면 서 15년 뒤에 븮 靑 衣 賊 入 自 國 城 東 門 븯 (왜적이 장차 서울 동문으 로 쳐들어 오 리라)하고 예 언을 하는 등 천문지리에 밝은 백 우당 박상의 선생을 비롯한 16위 선조 시향을 노강 박래호 선생의 집례로 지난 10일 전남 장성군 황룡면 신호리 경모재에 서봉행하고선조님의얼을기렸다. 백우당 박상의(1538~1621) 선생은 천문지리에 능통 하여세칭소강절선생이다시태어났다하였다. 사재감과 전옥서 주부를 역임하고, 임진왜란 때 명나 라 양호 장군이 군사(軍師)로 예우하였고, 1600년(선조 33년) 의인왕후 박씨의 타계로 목릉(穆陵) 장지결정에 참여하여 국장도감 관계자 포상할 때 관직을 제수 받아 충좌위 사정이 되었으며, 선생의 예언을 들은 율곡 이이 는 이 말을 귀담아 듣고 임진강변에 화석정을 짓고 들기 름을 먹여두어 후일 선조의 피난길에 칠흑 같은 밤에 강 을 건너기 위해 이 정자에 불을 붙여 무사히강을 건넜다 는일화를남겼다. 한편 제향 후 가진 총회에서는 신임회장 래지, 부회장 재원,총무지현,감사 재준 현종을추대하는 임원개편과 함께수입·지출결산보고가있었다. 재구 회장은 임기동안 항상 성원하여주고 후원해 준 종원 여러분 덕분으로 재정의 건정성을 높이는 한편 종 중의 기틀을 잡아 나갈 수 있어 감사드린다며 이임사에 갈음하고, 신임 래지 회장은 부족하고 미천하나 봉사하 라는 뜻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 일해보겠다며 협조를 당 부했다. 신임 래지 회장은 금융계에서 정년을 맞은 후 문중 총 무와 상급종친회인 돈재공 총무, 부회장을 역임하고, 선 조 백우당 선생의 자료를 수집하는 등 선조님 현창사업 에 매진해 오고 있어 백우당 종중의 살림을 맡을 적임자 로예전부터거론된바있다. 한편 이날 제향에는 돈재공파 래환 회장이 임원진과 함께참례하고헌관으로헌작하여제례가더욱빛났다. /박용서명예기자(전남장성군지부) 밀성박씨백우당종중신임래지회장추대 정기총회및경모재(景慕齋)시향봉행븣천문지리에밝은백우당박상의선생 향사후경모재임원진이 기념촬영을하고있다. 제향광경 박재구이임회장 박래지신임회장 임란 때 아버지 동천공(휘 오)과 더불어 백의(白衣) 로 창의하여 김해성에 침입한 왜적을 물리치는데 앞장 서는 등 7년의 전쟁동안 수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임란공신 무숙공 박진영 장군 부조묘 제향이 지 난 23일 오전 9시 선조의 묘소참배 후 11시 경남 함안 군 산인면 내인리 사당(祠堂)에서 영덕 前 영동정공파 대종회장의 집례로 철곤 차종손의 초헌례와 밀직부사 공 후손으로 청도에 거주하는 희준, 경상우도 학맥을 이 끈 만 성 공 ( 휘 치 복 ) 의 종 손 성 국 현 종 이 각 각 아 헌 과 종 헌 으 로 헌 작 하 고 경 주 축 관 의 독 축 으 로 엄 숙 봉 행되었다. 부조묘는 나라에 큰 공훈을 세운 사람의 신주는 영원 토록 봉사(奉祀)하도록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神位)로 무숙공은 1594년 무과에 급제하고 권율 장군 휘하에서 종군하는 등 선무원종 2등 공신으로 책록되었으며,1599 년 용궁현감으로 출사하여 조선의 서북방을 방어하는 무장으로활동하였다. 1624년 평산도호부사겸 황해도 방어사 재임시 이괄의 난이 일어나 아들 유룡,임룡과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세 워 삼부자(三父子)가 진무원종 1등 공신으로 책록되었 다. 이후 낙향하여 강학(講學)과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 고, 1626년 병조참판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 으며, 1636년 병자호란에 69의 노구(老軀)에도 불구하고 향병 을 모집하여 남한산성으로 향하던중 화의가 성립되었다 는 소식을 듣고 말(馬)에서 떨어져 비분통곡하고 귀환 하여 1641년 73세의 일기로 세상을 마쳤다. 1644년 자헌대부 호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1649년 숭 정대부 판돈녕부사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에 증직되고,1 871년 무숙(武肅)의 시호가 내려지고 국불천위를 하사 하였다.이때에 7세손 만성공(휘 치복)이 선조의 유고를 모아 광서실기를 편찬하였으며, 1880년 삼황대보단(三 皇大報壇)에배향케하였다. 그리고 근세의 후손들은 선조의 훌륭한 유훈을 기리 고 널리 알리기 위해 선조의 유품 도록을 만들고,학술발 표회를 열어 ‘무숙공 박진영 그 애국의 삶을 조명하다’ 을출판하는등다각도로현창사업에매진하고있다. 한편 이날 제향에는 영동정공의 두 아드님 중 차남 기 봉(奇鳳)의 후손(밀직부사공 后)들이 경북 청도군 이서 면에서 대거 참석 형제의 우정을 나누어 무숙공 종중의 정규 회장은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밀직부사공파 종중 의 대소 행사에도 적극 함여 할 것이라고 밝히고 지속적 인왕래로돈독한정을나누었으면한다고말했다. /자료제공박권곤(무숙공종중총무) 임란공신무숙공박진영장군부조묘제향봉행 선조의훌륭한행적더듬으며재조명 등현창사업다각도로추진 제향후참석한 종원들이 기념촬영을하고있다.(앞줄왼쪽에서다섯번째부터철곤초헌관, 희준아헌관, 성국종헌관 경주축관 , 영덕집 례,정규무숙공종중회장) 경남 양산 정신의 근간인 삼조의열 3위 (位) 충렬공 박제상, 양주방어사 김원현, 양산군수 조영규를 비롯해 임란공신 28 위(位), 항일독립유공자 39위(位)의 충 혼을 모신 충열사 춘향제례에 영해박씨 대종회 임원진이 제례일인 지난달 27일 참례하여 선조 관설당 선생의 유훈을 기 렸다. 충렬사는 옛날 경남 양산(옛 삽량주) 지방 유림들이 사당을 건립하고 신라 만 고충신 관설당 박제상 선생의 영혼(靈 魂)을 추모하여 오다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훼철된 것을 1696년(숙종22) 군수 조무훈이 임란공신 조영규 공(公) 및 백수회 공(公)의 충절을 기리고자 군 민의 뜻을 모아 양산읍성내 동헌 남쪽에 창건하였다. 1788년(정조12)에는 양산군 수를 지낸 권만(權萬)의 봉산(封山) 혁 파에 대한 공로가 인정되어 충렬사에 배 향되었다. 1868년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자 1 873년 군수 손상일이 충렬사 터에 조선 임진왜란 때 양산군수 조영규 公의 추모 비단을세우고새롭게향사를시작했다. 1845년(헌종11) 군수 한긍인이 양산읍 성 내에 신라 때 삼량주간이었던 만고충 신 박제상 선생의 비를 세우고, 1878년에 는 군수 이만도가 고려 때 앵주방어사였 던 김원형 公의 비를 세움으로서 양산의 삼조의열비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들이 비석이 양산읍성 내에 있었으 나 일제강점기 동안 피란신세를 겪었고, 광 복 후 지 역 원 로 들 이 조 성 한 춘 추 원 장 충단에 모셔져 오다 이곳 새 충렬사 내로 옮겨졌다. 또한 임란공신과 항 일독립운동 유공자 들도 이곳에 함께 모시게 됨으로서 흩어 진 양산 선각자들의 혼령을 한곳에 모시 고 길 이 추 모 할 수 있 게 되 었 다 . 한편 이날 제향행사는 나동연 양산시 장이 초헌관, 윤영석 국회의원이 아헌관, 한옥문 양산시의회 의장이 종헌관을 맡 으며 초헌례, 아헌례, 종헌례, 참례자 분 향순으로진행된다. /자료제공박순일부회장 영해박씨대종회양산충렬사향사참례 시조관설당배향 영해박씨대종회임원진이 제례후잠시포즈를취한다. 밀성박씨 행산공파 대종회(회장 재상)는 지난 16일 경남 밀양시 부북면 소재 행산재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신임회장에 중희(仲熙)찬성사공 종중 회장을 추대하고 곧바로이취임식을함께가졌다. 신임 중희 회장은 1934년생으로 영남대 약대를 졸업 하고 경남 남해에서 약국을 경영하며, 행산공의 손자 찬 성 사 공 ( 휘 臣 悅 ) 과 그 의 아 들 진 사 공 (휘 時 擧 ), 손 자 감 찰공(휘 宗枝)3代의 묘소가 실전되어 수백년 향화를 받 들지 못하고 있는 때에 지난 2012년 단소를 세우고 제향 을 받드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내 추진력을 인정받은 바 있어 재상 회장은 든든한 마음이 든다고 말하고 그동 안 성원해준 종원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이 임인사를대신했다. 중희 회장은 이날 수락인사를 통해 종회장으로 추대 해 주심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중차대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하고 첫째도 화합,둘째도 화합,셋째도화합 을 목표로 하여 종회 이사회 및 육신지파 회장단과 상의 하여 종사 일을 수행하고자 한다며 향후 운영계획을 밝 히고 8가지 중점사업 계획으로 행산공, 도은공, 소감공 설단을 격 에 맞도록 정 비 하 고 , 육신 선조 참 례 및 육 신지파 운 영 활 성 화 로 종회발 전 도모,행 산재 화합 추진위원회(가칭 화추위) 신설 운영, 대종회 소유 부동 산의 운영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여 홍보하고 투명한 재 무관리 추진, 종친회 회원명부 발행, 행산여성회 운영, 행산재 건물 도색, 대종회 기금 1억원 모금운동 추진 등 을 발표했다. 이중 1억원의 기금 모금 후 설단정비사업 으로 2천5백만원,행산재 도색 2천5백만원 등 5천만원을 사업비로 지출하고 나머지 5천만원은 운영기금으로 예 치한다고밝혔다. 중희회장의임기는2년으로2018년까지이다. 밀성박씨행산공파대종회제16대중희(仲熙)회장취 임 8대중점계획밝혀븣종회의화목과발전을위한끊임없는사랑과관심당부 박재상이임회장 박중희 신임회장 운암서원에 배향된 선현(先賢)의 가르침을 본 받기위 한행렬이지난21일비가오는가운데줄을이었다. 고려 팔은(八隱) 중의 한분으로 벼슬이 판서에 이르 렀으나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낙향하여 은거한 뒤 조선 조에서 다섯 번이나 불러도 나아가지 않고 충절을 지킨 송은선생(松隱先生, 휘 익)과 선생의 중자(仲子, 둘째) 이며 포은의 문인으로 안음현감(安陰縣監)으로 계실 때 청백(淸白)과 애민(愛民)으로 선정(善政)을 베풀어 백 성들이 송덕비(頌德碑)를 세운 인당선생(忍堂先生 휘 소), 인당선생의 오세손(五世孫)으로 임진왜란에 임금 을 호종하였고, 전쟁에 나아가 공을 세워 선무공신일등 (宣武功臣一等)에 책봉 된 의와(義窩, 휘 홍정)선생, 의 와공의 증손으로 효자 우곡선생(愚谷 先生, 휘 신윤)의 위패가 봉안된 경현사(敬賢祠)춘향제례가 경남지역 유 림과 후손 등 150여명이 참례한 가운데 엄숙 봉행되었 다. 운암서원은 우곡[愚谷, 휘(諱) 신윤(身潤)]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학덕이 높고 효행이 지극하여 선생 께서 돌아가신 5년 후인 1702(肅宗 28)년 향토 사림의 중지(衆志)를 조정에 상소하여 호조좌랑(戶曹佐郞)에 추증되어 운암사(雲巖祠)와 불천위(不遷位)로서 별묘 (別廟)하여 제사하다. 1844년(헌종10)에 서원으로 승격 되어 지역민을 교육시키는 사설교육기관으로서, 이 고 을 인재 양성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러나 1868년(고종 5)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훼철되고,1876년(고종 13)에 중건하여 우곡 선생의 제사만 모시게 되었다. 그 러나 시설은 퇴락하고 지붕이 낡아 비가 샐 지경에 이르 러, 지역유림과 후손들의 서원 중수 논의가 계속되어 20 01년 구지(舊地)에 서원중수를 위한 착공에 들어가 200 4년(당시회장 병식) 역사적인 서원 복원과 동시에 유림 의公儀로선대3位를함께봉안하게되었다. 수위신좌(首位申坐)는 송은선생(松隱先生) 휘(諱) 익(翊), 제2좌(第二座)는 인당선생(忍堂先生) 휘(諱) 소(昭), 제삼좌(第三座)는 의와(義窩) 휘(諱) 홍 정(弘 貞), 제사좌(第四座)는 우곡선생(愚谷 先生) 휘(諱) 신 윤(身潤)이다. 한편 이날 제례 전 종중의 태식 회장은 서원을 찾은 유 림과 일반 참배객을 반갑게 맞으며 우중에도 불구하고 찾아준모든분에게감사드린다고말하고말했다. 운암서원경현사제향유림주관으로봉행 불사이군의충절을지킨송은선생(松隱先生),아들인당선생(忍堂先生), 선무공신의와공(義窩公),효자우곡선생(愚谷先生)얼기려 서원전경맨위가운데건물 경현사 제례광경 - 도포 (道袍) 단정하게 차려입은 참례자 모습이 인상깊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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