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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4월30일 토요일 6 (제112호) 관향조 종친회 여자의 곧은 정조는 목숨보다 소중하다. 죽음으로서 정조를 지킨 여흥민씨의 정신을 기리고 널리 알리는 정 려가 경남 밀양시 상동면 가곡리 앞 도로변에 세워져있 다. 여흥민씨는 밀양시 하남읍 파서리 여흥(驪興) 5우선 생의 5형제 중 삼매당(三梅堂) 구서(九敍)의 딸로 태어 났다.장성하여서는 밀성박씨 졸당공(휘 총)의 6대손 희 량(希良)에게출가하였다. 탁월한 총명과 여자가 지켜야할 모든 분야에 막힘이 없어 한가문의 꽃으로 시댁 어른들에게 효행이 타의 모 범이 되었고 행실은 전체 문중의 귀감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을 당하여 왜적들이 물밀듯 닥쳐오자 다른 두 여 인 과 함 께 집 뒤 북 산 바 위 굴 에 숨 었 으 나 왜 적 이 절 벽 을 타고 다가오자 화를 피해 바위 절벽에 올라 투신자살 하여정조를지켰다. 임진왜란이 평정된 후 고을 수령이 장문(狀聞)을 올 려 나라에서 정표(旌表)가 내려져 북산아래에 정려각을 세웠으나 오랜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퇴락하여 허물어 진 것을 마을 서쪽으로 이전했는데 불행하게도 화재로 소실되었다. 지금의 정려각은 1946년 후손들의 정성으 로 복원하여 퇴수재 이병곤 선생의 기문을 판상에 새겨 걸었으나 영구히 보존하기 위하여 2000년 각내에 단비 를 세 워 이 를 다 시 옮 겨 실 었 다 . 숙 부 인 여 흥 민 씨 의 무 덤 은 낙화암(落花岩)밑에 있고, 부인이 몸을 던진 바위를 지금도낙화암이라부르고있다. 후손들은 선조비의 정열을 앙모(仰慕)하여 천 추(千 秋)맑게전하고자노력하고있다. 부인의 아들 종민(宗閔)은 임진왜란에 창의의사들과 함께 수성을 맹세하고 망우당 곽재우 진영에 합류하여 화왕산 전투에서 큰 전공을 세워 가선대부 돈녕부지사 겸 오위도총부부총관에 증직되고 아버지(휘 희량)또한 장례원판결사에증직되었다. 가곡리는 임진왜란 이전 경남 합천 대병에서 입향한 밀성박씨졸당공파후손들의집성촌이다. /자료제공박호정(밀성박씨 전국청년회지도위원) 뱚효븡열부 열전(列傳) 왜놈을 피해 몸을 던져 정조(貞操)를 지킨 여흥민씨(驪興閔氏) 여흥민씨정려각-경남밀양시상동면가곡리도로변 밀성박씨전국청년회는 지난 2일 경남 밀양시 내일동 밀성재 정당에서 제16차 정기총회를 갖고 수입지출 결산 및 감사 보고, 2016년 사업계획 및 예산안을 상정 하여 원안대로 처리한 가운데 2016년 주 요 사업으로 지난해 메리스사태로취소되 었던 선조유적지순례, 밀성재 춘추향사 참례 독려, 연말 송년행사 등을 선정하였 다. 청년회는 선조유적지 순례를 통하여 선 조님의 유훈을 기리고 회원 간 친목도모를 이루어 오면서 종중 어른들로부터 찬사가 이어졌으며, 그동안 송년행사를 호텔에 서 개최하였으나 밀성재 성역화 사업으로 산뜻하게 정비된 재 실에서 갖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에 전국의 어른들을 모 시고 전국 밀성인의 축제 행사로 승화시키기로 해 벌써부터 기 대된다는반응이다. 여성회는 이날 총회에서 재숙회장의 임기를 1년 연장하는 안 을 상정 처리하고 임기를 2017년 3월까지 연장하고, 박현준(밀 양고2), 박상진(밀성제일고2), 박왕용(세종고1), 박경금(세종 고1), 박준호(밀양중2) 장학생 등 5명에게 각 20만원씩의 장학 금을전달하였다. 한편 이날 총회에서 부돌 청년회장은 “지난 해 청년회장의 막 중한 소임을 받고 1년을 보내면서 많을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 다 . 과 연 소 임 을 다 할 수 있을지,또 청년회가 더 침체되지는 않 을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전임 회장님 을 비롯한 고문님 그리고 집행부 임원진 모두가 저에게 보내준 무한한 신뢰와 성원이 있어 지금에 이르렀지 않나 생각해보며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우리는밀성재일원으로서선조를위한숭조와회원상호간애 종정신을 발휘하는 것으로 이를 실현하기위해 더 많은 회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모두가 회원배가운동을 펼쳐 주시기를 당부 드린다.”라고말했다 청년회는 신규회원 영입에 최선을 다해왔으나아직미미해1 2중조 종친회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주시길 촉구하고 전국 의젊은밀성인들의참여를기다리고있다. 밀성박씨전국청년회·여성회창립총회성 료 7월선조유적지순례및송년모임밀성재에서,신규회원영입에최선다해야 총회직후 임원진이 함께모여 더 발전하는 청년회와 여성회를 만들어 보자 며파이팅을외치고있다. 박부돌 회장 밀양박씨 규정공 후(后)참판공(휘 눌 생)과 그의 아들 충양공(휘 경신)의 시 향이 지난 13일 전북 완주군 용진면 상 삼리(관전부락)원모재(遠慕齋)에서 본 보 박방무 명예기자의 집례로 종손(宗 孫) 병대(炳大) 초헌관의 분향례와 강 신, 초헌례와 재균(宰均) 축관의 독축에 이어 순정(淳禎), 병진(炳珍) 현종이 아 헌관과 종헌관으로 각각 헌작하고 병모 (炳模), 병득(炳得)현종이 우집사와 좌 집사를 각각 맡아 제례를 도운 가운데 엄숙봉행되었다. 제례 직후 개최된 총회에서는 형상 회 장의 주제로 세입세출 결산보고 및 감사 보고, 업무보고를 원안대로 처리하고 상 정된 농지 임대차계약, 위토답 매도, 두응촌 선조시향의 건은 지난달 개최된 임원회의에서 심의한 안건으로 이날 추인의 절 차를밟았다. 참판공은 시문에 뛰어난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며, 그의 아 들충양공은생육신에비유되는충절을보였다. 參判公(참판공)의 자는 돈지(惇之)휘는 눌생(訥生)호는 운 수이며 시조왕의 49세손으로 규정공 휘 현(絃)이 고조가 된다. 호조전서(戶曹典書) 휘 침의 3남으로 고려 공민왕 갑인년(137 4)에 출생하여 15세부터 목은(牧隱)이색(李穡)의 문하에서 수 학(受學) 하였으며 1409년(조선 태종9년) 36세에 문과에 급제 훈련원판관(訓練院判官)을 시작으로 두루 요직을 거쳐 세종 때 에 훈련원관사(訓練院觀事)와 호조참판(戶曹參判)을 지냈으 며 1449년(세종 31년) 8월 7일에 하세하니 향년 76세였다.배위 는중추부사(中樞府事)허해의따님이다.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에 증직(贈職)되고 시호(諡號) 는 충간(忠簡)으로 고흥(高興) 숭양사(崇陽祠), 장흥 세덕사, 경산(慶山)율산서원(栗山書院)에배향(配享)되었다. 아드님인 충양공(忠 翔公의)휘는 경신(諱景愼)으로 자는 자 흠(子欽)이고 호는 둔수(遯 쑴)로 배위는 정부인 경주이씨이 다. 1414년(태종14)에 출생하여 1438년(세 종20) 25세에 등제(登 第), 경주판관(慶州判 官), 1453년(단종) 훈 련 원 사 직 ( 訓 練 院 司 直)으로 재직 중 세조 의 왕위찬탈에 종형 (從兄) 청재공(淸齋 公 諱 審 問 )과 함 께 단 종(端宗) 복위(復位) 에 뜻 을 같 이 하 여 곧 은 마음과 숨은 절개는 생육신과 비유되었다.묘소는 全州 東十 二里 소양산 (韶陽山) 표동(瓢洞) 계좌(癸坐)이나 실전(失傳) 선고묘하(先考墓下) 설단(設檀)하였다. 철종(哲宗), 병진(丙 辰)1866에 비로서 호조판서(戶曹判書)를 증직을 받고 충양(忠 翔)의시호(諡號)받았다. 경산의율산서원(栗山書院)배향되었다. /박방무명예기자(경북경산시지부) 참판공 (휘눌생) , 아들 충양공 (휘경신) 시향봉행및定總 총회에참석한 종원들이 한자리에모였다. 참판공묘소(上),아래는충양공단소 전북 완주군용진면상삼리(관전마을앞) 밀성박씨 돈재공 파 대종회(회장 래 환 )는 지 난 4 월 2 일 전남 담양군 월산 면 월산리에서 단 종절신 휘 연생(衍 生, 號 遯齋)의 시 향과 3일 전남 장성 군 황룡면 금호리 호산재에서 돈재공 의 조부 고려의사(高麗義士) 휘 승봉(承 奉)을 비롯한 후예의 시향을 양일에 걸쳐 노강박래호선생의집례로봉행하였다. 돈재공은 단종 때 충무시위사 대호군 (大護軍)으로,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영 의정(領議政)에 오르고 위엄이 날로 높 아지자 신숙주(申叔舟), 한명회(韓明 澮), 권람, 정인지 등은 수양의 처소를 드 나들며왕위에오르기를논의하였다. 이때 공은 수양과 절친한 사이이나 수 양의 부름을 거절, 남하 할 것을 결심하 고, 고향 태인에서 아버님을 모시고 장성 황룡면 아치실로 옮긴 뒤, 다시 독신으로 담양월산사위이석손집에은거하였다. 수양이 1455년 왕위에 오르고 12월 27 일 전지(傳旨)하기를 뷺대호군 박연생은 원종공신(原從功臣) 삼등(三等)에 녹 (錄)한다뷻 라며 교서(敎書)를 내리고 불 렀으나 병든 몸이라 칭하고 나가지 않으 며 끝까지 절의를 지켜 후손들은 이날 제 향을 맞아 전국에서 이른 새벽부터 찾아 와선생의절의정신을기렸다. 다음날 3일에는 밀성대군의 17世이자 도평의사공의 10世로 전남 장성의 최초 입향조인 사정공(司正公) 휘 덕명(德明) 을 비롯하여 조선조 청백리 정혜공(貞惠 公) 휘 수량(守良) 까지 5世의 묘소를 수 호하고 재향을 받들며 자녀들의 강학(講 學)의 장소로 건축된 호산재에서 제향을 받들었다. 돈재공파 대종회는 호산재 제향 후 정 기총회를 열고 대종회 전반에 대해 의논 한 가운데 래환 회장은 단종 절신의 후예 임을 항상 명심하여 줄 것을 당부하고 종 중의 더 많은 관심을 보여줄 것을 당부했 다. 한편 돈재공파 향사를 보면 시계를 돌 려놓은 듯하다. 규범에 어긋남이 없는 예 절과 래환 회장과 춘병 총무의 부인 등 집 행부 임원진 가족들의 헌신적인 노력으 로 정성스럽게 준비한 제수, 집에서 담근 전통 막걸리를 함께하며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정겹고아름답기까지하다. /자료제공박지현밀성박씨전국청년회부회장 밀성박씨돈재공파춘향봉행 선조의 높은 절의정신 기려 4월 2일-3일 제례에참례한 후손들이 호산재제향후기념촬영을하고있다. 호산재-전남장성군황룡면금호리 한국전쟁의 아픔이 서려있는 곳으로 최초의 창 건시기는1898년선조님의노고로 처음창건하 였으나 전쟁 때 전소되어 화재에 취약한 목조 대 신 석축으로 쌓아 올 린 것이 특이 하 다. 박래환회장 고려 때 과거제도를 보면 진사 중에서도 특별히 학문 이 깊고 당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사문학(四門學)에 뛰어난 학자를 따로 뽑았는데 이들을 국자진사(國子進 士)라 했다.국자진사는 많아야 서너명을 뽑았고 대개는 한두 명이었다. 여러 학자들의 추천을 받아 국자진사가 되기도 했다. 학문적인 명성이 전국을 뒤흔들 정도라야 여기에추천될수있었다. 이에 사문진사공(휘 원)과 그의 아들 휘 교연(四門博 士)의 학문 깊이를 가늠할 수 있으며, 뒤이어 간의대부 공(휘 인익), 정재공(휘 의중)의 학문과 충절은 타의 추 종을 불허하기에 지난 20일과 21일 양일에 걸쳐 봉행된 삼송재 시향에는 전국에서 모인 후손들이 선조의 위업 을기리기위한추모행렬이이어졌다. 사문진사공을 비롯 아드님 휘 교연(皎然), 손자 휘 기 보 (奇 輔 ), 증 손 휘 홍 승 ( 洪 昇 ), 현 손 휘 함 ( ) , 5 대 손 정 승공 휘 화(華), 6代孫 휘 인기(仁杞), 간의대부공의 두 아드님 소부시판사공(小府寺判事, 휘 琮), 이조좌랑공 (吏曹佐郞公,휘 球)의 제례는 첫날인 20일,다음날인 21 일(음3.15)에는 우천관계로 삼송재에서 간의대부공(諫 議大夫公 휘 仁翊), 정재공(貞齋公 휘 宜中)을 비롯한 4 대9위등12代18位선조의제향이이어졌다. 흥식 前 신덕왕릉 참봉의 집례로 봉행된 사문진사공 이하 6位 단소 제향에는 재수(在洙, 광주), 종기(鍾基, 김제),재한(在漢,대구)현종이 각각 초헌,아헌,종헌을 맡아 헌작하고 인규(寅奎,김제) 축관이 독축하였으며, 현수(청도), 여식(대구) 현종이 각각 좌집사와 우집사 를 맡고, 인석(울산) 前 지마왕릉 참봉이 사준(司 펠)으 로제례를도와차분하고엄숙하게봉행되었다. 한편 사문진사공파 대종회는 20일 오전 11시 삼송재 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세입세출 결산 및 감사보고를 원 안대로 상정 처리하고 2016년 주요사업으로 대동보편 찬, 김제시 온천개발 종토수호, 선산 종토 및 재실 보존 (보수)관리, 숭조, 애종심 고취, 정재일고 반질 및 처리 등을수립하고그에대한예산안을상정처리했다. 정재선생일고(貞齋逸稿)는 정재 박의중 선생의 문집 으로 지난 2012년 국역으로 발간한 것으로 정재 선생의 시·문, 고려사 열전에 입전(立傳)된 ‘본전(本傳)’을 비 롯하여 변계량이 지은 만장(輓章) 등 불사이군의 충절 을 지킨 선생의 일대기를 엿볼수 있어 소장가치 가 높은 문집이다. 원준 대종회장은 총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훌륭한 선 조님을 모신 우리 모두는 항상 몸가짐부터 남달라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삼송재가 더욱 발전 하려면 모두가 화 합하고 하나가 되어 적극 동참할 때 강능할 것이라며 적 극적인동참을강조했다. 삼송재주변(묘역)에는세그루의소나무가있다. 정재선생의 평일 행세의 바름에 감응되어 생긴 것으 로 그 수는 윤리의 한 그루와 남전의 두 그루를 합한 것 으로 그 절개는 진시황이 봉한 대부(大夫) 송(松)을 비 웃을 것이라 하였다. 남전의 두 소나무(雙松)는 세속의 번거로움이 선지에 스며들까하여 오히려 단교(斷橋)를 다행으로 여기는 심사가 있다. 하여 정재선생의 충절과 곧은선비정신을비유한것으로보인다. 남전(藍田)은 중국(中國) 섬서성(陝西省) 서안시(西 安市) 동남방에 있는 현(縣)의 이름으로 강 건 너 두 그 루 의 소 나 무 가 있 어 빼 어 난 경치를자랑수 많은석학들이그 소나무를 비유하며많은시문을남겼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사문진사공파대종회定總및삼송재시향봉 행 사문진사공을비롯한 아드님휘교연(皎然), 손자휘기보(奇輔), 증 손휘홍승(洪昇), 현손휘함, 5대손정승공휘화(華), 6代孫휘인기 (仁杞)단소제향광경 단소 제관 왼쪽부터 초헌관 재수, 아헌관 종기, 종헌관 재한, 집례 흥식,축관 인규,원준대종회장 학문과충절의표본이된선조의위업(偉業)기리려는 후손들행열이어져2016년사업대동보편찬등 삼송재재향선조세계도 삼송재묘역에있는소나무,가지가무성 하면서도 위 아래 고르게 뻗어 있어 보는이로 하여금 발길 음멈추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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