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뱚2016년 4월 30일 (음 3월 24일) 토요일(신라기원 2073년) 인체파동원리 http://blog.daum.net/tongnamu79 전화:053-588-7300 제112호 12면(월간)뱚 손을 얹으면 아픈 곳이 낫는 보석체험, 추풍령 통나무연수원 븡펜션. 문의:010-8020-8075 강릉의 토호성씨로 강릉지역의 성씨문 화를 선도하는 강릉박씨대종회 2016년 정기총회가 지난 11일 강릉시 저동 경양 사에서개최되었다. 이날 회의는 2015년 사업보고 및 세입 세출 결산, 2016년 사업계획으로 회관구 입 여부, 경양사 삭망봉심, 전 종원의 명 단 수 집 등 을 선 정 하 고 이 에 대 한 예 산 안 을 상정 원안대로 처리한 뒤 지난달 이사 회에서 선출된 임원진의 취임식을 가진 가운데 용준 회장은 이임사를 통해 대과 없이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음은, 여러분 들의 애종정신과 함께 많은 협조의 덕분 이었음을 믿어 감사드리고, 재임동안 하 고자 했던 계획을 마무리하지 못한 일도 있으나 신임 회장단과 상의하고 협조하 여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노력하겠 다고 말하고 이어 대종회의 화합은 질책 보다 칭찬과 아우름이 더 좋은 길이 아닐 까생각한다며이임사에갈음했다. 신임 재동회장은 부족한 몸으로 중책 에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낀다며 소감을 밝히고 그러나 전임 집행부에서 경양사 를 비롯한 종중의 모든 시설물과 운영 등 에 있어 어느 성씨보다 체계적으로 잘 이 끌어와 걱정을 덜 수 있을 것 같아 신임 집행부 임원진과 합심하여 최선을 다하 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하고 대종 회의 발전은 적극적인 참여가 우선으로 특히젊은종원들의참여를당부했다. 이날 이임하는 용준 회장은 지난 2012 년 취임하여 중임으로 4년의 임기동안 긴 축재정으로 3천3백여만원의 자산을 증식 시켰고, 강릉박씨를 대내외 알리는 등 많 은 업적을 남겨 이날 종원들의 정성이 담 긴 공로패와 기념품으로 순금열쇠가 전 달되었으며, 신임 재동회장은 오랫동안 사무국장을 맡아 대종회의 기반을 닦았 으며, 대동보 편수위원으로 컴퓨터 실용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훌륭한 족보 를 발간한 바 있어 이날 취임을 강릉박씨 대종회가 더욱 발전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이날 개편된 임원진은 신임 회장 재동, 상임부회장 래균, 감사 영화, 용범, 사무국장 종길 현종이 각각 맡아 함께 취 임했다. 강릉박씨는 신라충 신 관설당(휘 제상) 후손으로 고려 신종2년(1199년 乙未)에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로 계 림군(鷄林君)에 봉해진 휘 순(諱 純)이 치사(致仕)하여 강릉으로 내려가 여생을 마치니 후손들이 그를 1세조로 하여 세계 를이어본관을강릉으로삼게되었다. /박용백명예기자(강원도강릉시지부) 강릉박씨대종회정기총회및회장이·취임식 성료 강릉박씨대종회집행부 임원진(왼쪽부터회장재동,상임부회장래균,사무국장종길,감사영화,용범) 이임하는 용준 회장(左)에게 신임 재동 회장이 공로패와함께그동안의노고를치하하고있다. 밀성대군의 위패를 최초로 봉안 한 충 북 옥천군 이원명 용방리 소재 원덕사 춘 향 제 향 이 지 난 7 일 ( 음 3 .1 ) 전 날 내 린 비 가 개면서 화창한 날씨 속에 전국에서 찾 아온 많은 성손들이 배향된 선조의 유훈 을 기린 가운데 성근 밀직부원군파 전 (前) 회장의 집례로 세영(밀직부원군 后), 재석(구산군 后), 재한(사문진사공 后) 순으로 각각 초헌례와 아헌례, 종헌 례가 이어지고, 난수(초암공 后) 축관의 독축으로엄숙봉행되었다. 한편 전날 밤 개최된 개좌와 총회는 원 덕사대종회 중흠 회장이 지난달 말 전북 대병원에서 심장판막증 수술로 인해 불 참한 가운데 수입·지출 결산안과 감사보 고를 원안대로 처한 한 후 정화 부회장이 주재 한 가운데 정화 부회장은 어려운 여 건 에 서 도 임 원 진 모 두 가 함 께 해 주 어 감 사드린다고말했다. 이어 광대, 원환 부회장은 원덕사의 정 신적 지주인 중흠 회장의 유고에 가슴 아 프다며 쾌유를 기원하였으며, 시영 감사 는 원덕사는 수입원이 중흠 회장의 헌성 금 5백만원과 일반성손이 제향 참례시 헌 성하는 봉성금으로 운영되고 있어 긴축 재정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모두가 원덕 사에깊은관심을가져줄것을당부했다. 원덕사는 충북 옥천군 이원면 용방리 중구봉 아래에 1922년(壬戌) 창건되어 같은 해 동짓날에 밀성대군의 위패를 봉 안하였으며 1923년(癸亥) 6월5일 에 8도 의 후손들이 대군의 후예인 19중조를 배 향했다. 49년 후인 1972년(壬子)11월 7일 에 1위를 추배하고(판서 초암공 휘 麟祐) 또 12년 후인 1984년(甲子) 11월 동지 일 에 1위를 추배(정랑공 휘 粹)하여 원덕사 라 편액을 걸었으며 매년 3월1일 합제를 지내고있다. 위판(位版)은 신라왕자 밀성대군 휘 언침(新羅王子 密城大君 諱 彦沈) 주벽 으로 하고 동벽(東壁:동무,11位)에 밀성 부원군 태사공 휘 언부 (密城府院君 太師 公 諱 彦孚). 좌복야공 휘 언인(左僕射公 諱彦仁). 판도판각공 휘 천익(版圖版閣 公 諱 天翊). 사문진사공 휘 원(四門進士 公 諱 元).사헌부규정공 휘 현(司憲府糾 正公 諱 鉉). 영동정공 휘 원광(令同正公 諱 元光). 전법판서공 휘 인우(典法判書 公 諱 麟祐). 대제학공 휘 시용(大提學公 諱 時 庸 ). 구 산 군 휘 천 ( 龜 山 君 諱 횡). 이 조정랑공 휘 수(吏曹正郞公 諱 粹). 수사 공 휘 근(水使公 諱 瑾), 서벽(西壁: 서무, 10位)에 도평의사공 휘 언상(都平議事公 諱 彦祥). 밀직부사공 휘 양언(密直副使 公 諱 良彦). 삼사좌윤공 휘 을재(三司左 尹公 諱 乙在).밀성군 충헌공 휘 척(密城 君 忠憲公 諱 陟).밀직부원군 휘 중미(密 直府院君 諱 中美). 태안군 양정공 휘 원 의(泰安君 惠文公 諱 元義).정국군 휘 위 (靖國君 諱쭈). 창원군 혜문공 휘 령(昌 原君 襄靖公 諱齡). 군수공 휘 치온(郡守 公 諱致溫). 부호군공 휘 태익(副護軍公 諱泰益)등 21현을 배 향하고 있다. 경내에는 유인당과 추원재가 있으며 헌성비(박성형, 박귀흠)가 있다. 여러 차 례 중수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20 09년 12월 옥천군 향토유적 2009-1호로 지정되었다. /박상섭편집국장(parkss1012@hanmail.net) 원덕사정기총회및춘향제례봉행 밀성대군을비롯한21현조배향븣중흠회장쾌유빌어 정화부회장이 총회를주재한 가운데참석한 임원진이 회의서류를살펴보고있다. 원덕사제관(왼쪽부터노영수석부회장,영덕집례관,세영초헌관,재석아헌관,재한 종헌관,난수축관) 시조대왕을 훌륭하게 양육하여 신라 를 건국하게 한 성모를 기리기 위한 춘 향제례가 지난 16일 선도산 성모사에서 박동준 전참봉을 비롯한 전현직 참봉님 과 성 손 등 6 0 여 명 이 참 례 한 가 운 데 성 모사 봉찬부녀회 주관으로 안춘자(安春 子) 집례관의 창홀에 따라 안순희(安淳 姬) 성모사 봉찬회회장의 초헌례와 박 삼희(朴三姬) 부회장, 박순연(朴順蓮) 부회장의 아헌례와 종헌례, 이순조(李 順祚) 축관의 독축으로 엄숙 봉행되었 다. 경주시 서악의 선도산(仙桃山) 정상 부(해발 390m)에 위치해 있는 성모사 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후고려와조선을 거쳐 오는 동안 여러 번 개축되었는데 현존하는 성모사는 1974년 경산에 거주 하는 후손 성형ㆍ준형 형제가 건축비를 전액 자담하여 선도산 정상부 백운간에 우뚝하게준공하였다. 숭덕전 고왕록(攷往錄)에는 조선조 선조 임진왜란 때에 후손 언수(彦秀)가 시조왕의 위판을 모시고 선도산 성모사 에 피란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 오 릉경내 숭덕전 앞에 운암월성박공휘언 수공덕비가 그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또 선도산 낙서암 완문(完文)에도 선도 산은 성모의 사당과 시조왕의 위판을 임 시로봉안한유지라하였다. 특히 지난 2009년 9월 건조한 날씨 속 에 선도산 화재로 1.5ha 산림에 울창한 나무들이 모두 타버린 상황에서도 성모 사 만큼을비켜가신령스러운 곳으로 불 러지고있다. 한편 이날 제례를 위해 참례한 성손들 은화재로인해타버린나무들의잔해를 치우지 않고 방치되고 있는 선도산을 보 고 국립공원 관리의 현주소를 확인한 듯 관계당국을원망하고있다. 이날 제례는 험준한 산길로 인해 도보 로 이동해야 하는불편을경주시청년회 원들이 4륜 구동 차량을 이용 참례 성손 들의이동편의를제공하고,박춘학시조 왕릉 참봉은 찬창(贊唱)을 맡아 제례를 도와순조롭게진행되었다. /박태준명예기자(경북경주시지부) 성모사 춘향 봉행 임진왜란에시조대왕의위판임시봉안등븣성모사봉찬부녀회주관 성모사전경 성모사제관 왼쪽부터안춘자,박삼희,박연순,박순연,이순조. 신라왕자 월성대군의 춘향 제례가 지난 21일(음3.15) 오전11 시경북경주시소재월성재에서전국의성손350여명이참례한 가운데춘학前시조왕릉참봉의집례로엄숙봉행되었다. 이날 제례는 전날 밤 개최된 개좌에서 두한 前 경명왕릉 참봉 을 직일로 추대하여 집사분정을 마쳐, 초헌관으로 준창(焌昌) 대종회장이 헌작하고 이어 한곤(漢坤), 동식(東植) 현종이 아 헌례와 종헌례를 각각 올리고, 동우 前 유리왕릉참봉이 독축하 고, 이어 지하(支下) 열한位(11위) 열선조(列先祖)의 제향이 우천에도아랑곳하지않고차분하게이어졌다. 월성(경주)박씨는 신라 제54대 경명왕의 제8왕자인 월성대 군 박언의(朴彦儀)를 관조로 한다. 경주 남산(금오산) 서쪽 기 슭에제단을설단하고고려때좌사간을지낸 대군의아들박견 (朴甄) 및 지하(支下) 10위의 제단도 좌측에 병설하였으며 그 아래 월성재(月城齋)재실을 두고 매년음력 3월15일대군과 11 위선조의제향을봉행하고있다. 문하시중 유(瑜)의 아들 구(龜, 월성대군 13世)는 중군사정 부령(中軍司正副令)을 지냈으나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두문동에 은거하였다가 나중에 인천에 있는 산중에 은거하고 있어 이 산을 장아산(藏我山)이라 불려졌다. 그 후 조선 태종이 여러 차례에 걸쳐 벼슬을 하사하며 불렀으나 끝까지 절의(節 義)를지켰고,망경태(望京台)에올라망국 회한을 통곡으로 달 래다가장아산에서일생을마쳤다. 그의 아들 간(幹)은 양신(良臣, 슬기롭고 어진 신하)의 한 사 람이다. 그는 아버지가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키고 있어 섣불리 벼슬길에 나가지 못했으나, 그때는 그때요 이때는 이때라고 유 명(遺命)하심에 따라 태종 16년(1416년) 친시(親試)에 처음으 로 응시하여 유학(幼學)으로 제1등에 올랐다. 이로부터 문명이 조정에 휘날리게 되었고, 간관(사간원과 사헌부의 관리)에 발 탁되어 곧은 말로 당세를 흔들었다.특히 성균관 유생을 위하는 것이 많았는데 이로 인하여 호학(好學, 학문을 좋아하는 선비) 으로좋은소문이나라에더욱퍼졌다. 세종 16년(1434년)성균관 대사성에 오르고 단종원년 호조참 판,단종 2년(1454년)예문관 대제학 수(守)판의금부사를 역임 하고 증직으로는 의정부 좌찬성이다. 슬하 에 아들 휘(徽), 옹 (雍),숭(崇),준(峻)등 4형제를 둠으로서 크게 번성하게 되고, 이후 이들 후손들은 참의공파(휘 덕승,월성대군 18世),학수공 파(휘 학수, 18世), 사정공파(휘 사문, 17世), 고암공파(휘 민 록, 21世), 관포공파(휘 홍미, 19世), 전적공파(휘 사증, 25世), 세마공파(휘 대이, 20世), 계당공파(휘 대항, 20世), 진사공파 (휘 대순,20世),설봉공파(휘 대함,20世),후포공파(휘 홍업,1 9世), 생원공파(휘 원룡, 18世), 송애공파(휘 여룡, 18世), 해강 공파(휘 성룡,18世),운암공파(휘 홍수,19世),추산공파(휘 홍 중, 19世), 참판공파(휘경룡, 18世), 락재공파(휘 세명, 21世), 현감공파(휘 종겸, 16世), 인재공파(휘 사문, 16世), 무계공파 (휘 민수, 18世), 성은공파(휘 간, 21世), 락옹공파(휘 응상, 19 世), 중군공파(휘 길, 21世), 유촌공파(휘 종남, 20世), 송은공 파(휘 위,21世),임계공파(휘 민영,18世),청계공파(휘 민화,1 8世), 고은공파(휘영손, 20世), 진사공파(휘 경문, 16世), 운계 공파(휘 응강, 19世), 부사공파(휘 인득, 20世) 등 32개 소파로 분파되어 전국의 3만5천 여 종친은 인천 장아산, 동래 군위 경 주 등지에 집성촌을 이루며 왕손의 긍지를 갖고 치성을 다하며 종족간에종의를돈독히하고있다. /박태준명예기자(경북경주시지부) 월성재춘향제례봉행 월성대군과11위선조븣초헌관준창대종회장헌작 동우축관이 독축하고있다. 월성대군제향헌관(왼쪽부터초헌관 준철, 아헌관 한곤, 종헌관 동식, 집례 춘호,대축동우) 뱚 신라기원2073년청명 작헌례올려 청명대제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 커져 뱚 청명일을맞은지난4일숭덕전·릉참봉협의회(이사장박진국)주관으로청명작헌례가 봉행된가운데배례를올리고있다. ▶관련기사2면 CM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