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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 월 13 일 ③ 이은희권사(한나여전도회총무) 8월 8일, 입추라고는 하지만 따가운 햇살과 푹푹한 습기로 아침부터 30도가 넘는 폭염속 에 30여 명의 한나 여전도회 회 원들은 광림수도원으로 향했다. 도착하여 예배를 드린 후 올라간 기 도원뒤편야산의기도공원에는예수님의공생애사 역을보여주는11개의청동동상들이세워져있었다. ‘어린이를축복하시는 예수님’, ‘부활승천하신예수 님’등각각성경말씀을토대로크고작은형상을세 워놓고 자연과 호흡하면서 예수님의 사역을 생각하 게 만든 것이라고 했다. 정수길 목사님이 기독교의 형상(Icon)에 관하여 설명한 후에 각각의 장소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성경구절을 찾아 읽으며 은혜로운말씀을선포하셨다. 그런다음주어진기도 제목으로함께통성기도를하고다음조각상으로옮 겨갔다. 전도회회원들과함께기도하며말씀을묵상 하며걸었던그길에서예수님의숨결을잠시나마느 낄수있었다. 사실처음에기도원으로향할때는무더위때문인 지혹은현재의평온한일상때문인지특별한기대나 바램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나선 길이었다. 하지만 그짧은순례의길을마치고돌아온지금의나에게는 주님이주시는큰기대와소망이자리잡았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주님의 사역을 기념하여 만들어 놓은 청동모형의길을따라걷는것만으로도이렇게은혜 로운데예수님의흔적을직접밟아보고모세와바울, 그리고초대교회성도들의삶의발자취를찾아만져 보고느껴본다면그얼마나가슴뛰는일일까! 올가 을 서울교회 성도님들과 함께 떠날 Pilgrims' Vision Trip(서울교회성지순례단)을그려보며그소중한시 간들을더욱값지게하기위해서말씀과기도로준비 해야겠다는작은결심을해본다. 기도공원의 11개 형상 앞에서의 귀한 말씀과, 오 후에이어진‘그리스도인의신분적특권’에 대한 복 된 말씀, 기도회에서‘좋은 교회, 좋은 목사님'을 주 신것에대해뜨겁게감사하자면서기도회를이끄신 정수길목사님께감사를드린다. 또한이번일일수련 회를 위해 정성껏 준비하시고 헌신적으로 수고하신 이인선회장님을비롯한임원들과, 뜨겁게찬양을드 린회원님들모두에게사랑과감사를보낸다. 기도로아들을얻은어머니한나처럼기도하며어 떤역경속에서도주님의응답을기다리며인내하는 깊은믿음의소유자가되기를원하며살아움직이는 믿음을 소유한 주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결단해본다. 그리하여청량한가을의풍성한열매를바라보며하 루하루 준비하는 자녀가 되고, 주의 생명과 축복을 널리 흘러가게 하는 이 땅의 순례자로 살아갈 수 있 기를소망한다. 만민에게전도-한나전도회일일수련회 말씀으로걸어간순례의길 단기선교팀현지보고 제 6기 단기선교팀은 한국시간 8월 10일 오후 5시 50분인천공항을출발, 카자흐스탄현지시간오후11 시에알마티공항에도착하여버스로산길을7시간가 량이동하여목적지인따라즈에도착하였습니다. 장시간 여행에도 불구하고 저희 선교팀 30명은 모 두건강합니다. 한국과이곳은시차가2시간뿐이어서 저희가사역하기에별어려움은없을듯합니다. 그간낮기온이연일40도가넘는다고해서걱정이 었는데저희가도착한시점으로기온이10도가량떨 어져저희들앞에걸림돌하나가없어진셈입니다. 카자흐스탄 국교는 이슬람교이지만 러시아정교가 허용되고있어국민들이기독교에비교적호의적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적으로는 공개적인 선교 가금지되어있습니다. 하지만저희들이준비한것이 상으로하나님께서사용하시기를기도합니다. 카자흐스탄의선교사님들이대부분고려인들을대 상으로 선교 활동을 펼치는 반면 저희 이은준 선교사 님은 순수카작인들만을대상으로선교하십니다. 이번 선교는 무엇보다 미르 교회 건축에 집중하게 될 것입니다. 미르 교회는 앞으로 선교사님의 목회에 큰보루가되어야할것이며아울러의료봉사와미용 봉사로 따라즈 주민을 섬기고 주일에는 주변 어린이 들을 모아 찬양을 가르치며 짧은 카작어지만 복음의 씨앗을뿌리려합니다. 우리들의 사역과 건강과 안전을 위해 여러분의 뜨 거운기도부탁드립니다. 단기선교사오주명 광복절특별기획 광복절과신사참배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 각료들이 오는 15일 광복 절에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강행할 뜻을 거듭 밝히 고 있어 우리나라는 물론 주변국들로부터도 거센 비난을받고있다. 이 날에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중대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일본 이이곳에태평양전쟁A급전범14명을합사해놓았 기때문이다. 8월15일은우리로서는광복절이지만, 일본으로서는 2차대전 종전 기념일이자 사실상 자 신들의'패전을만방에알린' 날이다. 굳이이날에수많은잔학행위와침략을일삼았던 과거 일본군의 책임자들을 신(神)으로 모셔놓은 야 스쿠니신사에그것도일본의최고지도자가참배를 하는것, 피해국으로서는용납할수없는것이다. 그럼에도고이즈미는"신앙의자유, 마음의문제" 라는구실을대며이를정당화하고있다. 그러나이 것이 절대 순수하지 않은 행동임을 특히 우리 신앙 인들은지난역사를통해알수있다. 우리기독교인 들은일제강점기때바로이'신사참배' 때문에많은 탄압을받았기때문이다. 일제가기독교인들에게신사참배를강요하기시 작한것은1930년대초민족말살정책을펴 면서부터 이다. 이때 일본은 이미 우리나라 땅에 2백여 개의 신사를 지었고, 해방때까지 모두 1140여개의 신사 를 만들었다. 일제는 특히 당시 기독교계 교육기관, 즉 학교부터 신사참배를 강요했고, 이를 거부하는 학교는폐교시키거나자진폐교를유도했다. 이 때문에 1937년을 전후해, 숭실, 수피아, 영흥, 매산, 신흥, 계성, 신명, 경신, 정신학교등당시미션 계통의학교수십곳이잇따라폐교를당했다. 이어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평양신학교마저 신사참 배 거부로 폐교당하고, 급기야는 1938년 9월 평양 서문밖교회에서 열린 제 27회 조선예수교 장로회 총회에서는 일본 경찰의 감시 속에 끝내 신사참배 를결의하는비극적인역사를맞이하게된다. 이때부터신사참배를반대하는뜻있는기독교인 들의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갔다. 평양 산정현 교회 의주기철목사와평북의이기선, 경남의한상동, 주 남선, 전남순천의손양원전도사등많은목회자와 평신도들이 이에 앞장섰다. 8.15광복 때까지 10여 년간일제의극심한탄압속에신사참배반대로투 옥된기독교인은 2000여명에달했다. 또한200여개의교회가폐쇄됐으며50여명이순 교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러한 신사참배 거부 운동은우상숭배를거부하고, 신앙의순수성을지켰 으며, 당시교회의변질을경고함은물론일제의민 족말살정책에대한저항적인성격을지녔다는점에 서교회사적으로, 민족사적으로중요한운동으로평 가 받고 있다. 하나님의말씀을지키고우상숭배의죄를범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위기에 빠진 민족사회를 구하기 위해 헌신한 수많은 선조 기독교인들의 역사는 광 복61주년을맞는성도들에게커다란귀감이된다. 김민철(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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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과 신사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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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으로 걸어간 순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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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선교팀 현지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