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9page


539page

'장학기적비'의 이해를 돕는 글 ◎ 1947년 7월 19일 광주일고의 전산안 광주서중학교가 화재로 전소되고 말았다. 학교당국 동창회 학부형은 당시 광주의 유지이던 지정선 원창규씨 2인을 추대하여 '광주서중교사 복구기성회를 발족시켰다. 두 유지가 기성회를 중심을 불철주야 헌신한 결과 1951년 학교를 재건할 수 있었다. 동창히와 재학생들은 1953년 5월 1일, 교정에 장학기적비를 세워 두사람의 공적을 기록하였다(광주고보 서중 일고 팔십년사 415쪽) ◎ 지정선(1905~?)은 광주출신으로 쿄토도시샤(同志社)대학 예과를 졸업했다.1933년과 1937년 전남도의회 의원에 당선되었고, 1935년에는 광주부 부회의원을 지냈다. 여러기업의 간부를 역임했고, 1939년에는 전시체제강화를 위해 조직한 조선유도연합회 참사를 맡았다. 1940년 5월 그의 형 지창선과 함께 국방헌금 4만원, 광주부군사후원연맹 5천원, 광주신사조영비 5천원, 휼병가족 위문금 5천원 등 총5만5천원을 일제에 헌납했다.(친일인명사전 3,642쪽) 지정선이 일제의 식민통치기구에 참여하고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역사적 과오를 여기에 함께 적어 후대의 거울로 삼고자 한다. 2019년 11월 광주제일고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