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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김구는 외아들로 태어나 4번의 약혼과 파혼을 경험하고, 31살에 최준례와 결혼하였다. 딸 셋과 아들 둘을 두었으나, 세 딸은 어려서 죽었다.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한 후, 1920년 부인이 큰 아들 인을 데리고 왔다. 이어 어머니도 오셨고, 1922년 9월 둘째 아들 신이 태어났다. 단란한 가정이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부인이 둘째 아들을 낳고 계단에서 굴러 병을 얻었다. 병이 위급해지자 홍커우에 있는 폐병원에 입원시켰다. 부인이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지만, 김구는 가 볼 수 없었다. 홍커우는 일본인 거류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아들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어 어머니가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부인은 이미 영안실로 옮겨져 있었다. 환갑이 넘은 어머니가 어린 두 손자를 키웠다. 큰 아들은 밥을 먹을 나이였지만, 둘째는 어렸다. 어머니가 빈 젖을 물렸다. 굶지는 않을거라며 둘째를 고아원에 맡겼지만, 안타까워 어머니가 다시 데려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였다. 고향 사람들을 믿고 어머니와 두 아들을 황해도로 보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 채 자랐다. 아들은 13살이 되어 어머니와 함께 중국에 다시 왔다. 그러나 함께 지낼 수 없었다. 어머니는 82살에 돌아가셨다. 큰 아들 인은 안중근의 조카인 안미생과 결혼하여 딸 효자를 낳았다. 큰 아들이 충칭에서 폐병에 걸렸다. 며느리가 폐병 치료약인 페니실린을 구해달라고 간청하였지만, 동지들이 폐병으로 죽어갈 때 약을 구해주지 못했다며, 며느리의 부탁을 받아주지 않았다. 1945년 3월 29일 결국 큰 아들은 죽었다. 나이 28살이었다. 둘째 아들 신도 비행사가 되라며 중국 공군에 보냈다. 당시 공군은 전투보다 훈련받다가 사고로 죽는 일이 더 많은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