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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2(57세) 윤봉길 의사에게 폭탄을 주고 4월 29일 상해 홍구 공원에서 경축식장에 폭탄을 던져 시라카와 대장을 즉사케 하는 등 10여명을 살상. 1936(61세) 이동녕, 이시영 등과 함께 한국 국민당 조직. 1940(65세) 한국 독립당을 발족시키고 집행 위원장에 추대됨. 또한 임시 정부 주석으로 선출됨. 1945(70세) 27년만에 고국으로 돌아옴.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우리나라에 대해 5년간의 신탁 통치를 결정하자, 거족적인 반탁운동을 전개. 1947(72세) 남북 정당 사회 단체 협의회에 참석하여 완전자주 정부 수립 결의안을 지지함. 선생의 정치 이념을 표현한 〈나의 소원〉을 발표. 1949(74세) 6월 26일 낮 12시 36분에 경교장에서 육군 소위 안두희의 저격을 받고 운명. 7월 5일에 전국민이 애도하는 가운데 국민장으로 효창공원에 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