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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뭉클하게 만든다. tvN <오늘부터 출근>은 <미생>의 관찰카메라 버전에 가깝다. 연예인들 이 진짜 직장에 투입되어 신입사원으로서 업무를 해나가는 과정을 가 감 없이 보여준다. 거래처에 납품할 목록을 미리 적어놓지 않아 어떤 제품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 난감해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봉태규의 모 습은 직장 신입 생활을 했다면 누구나 느껴봤을 그 당황스러운 순간들 을 떠올리게 한다.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기획안이 회의에서 현실성이 없다며 여지없이 깨지는 상황도 그렇고, 해외 출장을 가서 어색하고 불편한 상사와 한 방에서 지내게 되는 경 험 같은 것도 직장인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장면들이다. 당신에게 건내는 작은 위로 최근에는 노래에서도 직장인의 애환을 담는 가사가 등장하고 있다. 장 기하와 얼굴들이 발표한 신곡 ‘사람의 마음’이 바로 그 곡이다. 라디오 DJ를 하며 받은 청취자들의 메시지에서 영감을 받아 쓴 가사가 멜로 디보다 먼저 마음을 공감시킨다. ‘이제 집에 가자 오늘 할 일은 다 했 으니까, 집에 가자 이제 슬슬 피곤하니까’나, ‘자 이제 시간도 늦었으니 까, 그냥 자자 오늘 하루도 길었으니까’ 같은 가사는 그리 특별할 건 없지만 그 소소한 직장인들의 소회를 담아냄으로써 깊은 여운을 남기 고 있다. <미생>이나 <개그콘서트>의 ‘렛잇비’, <오늘부터 출근>이나 장기하와 얼굴들의 ‘사람의 마음’ 같은 가사가 직장인들에게 던지는 것은 그리 대단할 것 없는 ‘작은 위로’다. 과거의 직장인이 등장하는 콘텐츠가 성 공신화 같은 꿈을 과감하게도 그렸다면, 지금의 콘텐츠들에 그런 야망 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어쩔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지친 직장인들의 어깨를 잠시 다독일 뿐이다. 지금의 직장인들에게 ‘성공’이나 ‘인생역 전’은 말 그대로 허구 속에서나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다가온다. 대신 그런 것보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그저 누군가가 공감해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그 안에서는 묻어난다. <미생>에서 스펙 없이 회사에 들어온 사회 초년생 장그래(임시완)는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안한 건 아니지만 열심히 하지 않은 것으로 하 겠다.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것이었다.” 이 독백에서 느껴지는 건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우리네 청춘들의 현실이다. 어찌어찌해 힘들게 회사에 들어온 장그래지만 그의 ‘스펙 없음’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그의 노력을 무력하게 만든다. 이런 현실이 어찌 장그래 같은 사회 초년생만의 이야기일까. 그가 속 한 영업3팀의 팀장 오과장(이성민)은 회사생활을 바둑에 빗대 이렇게 말한다. “이왕 들어왔으니까 어떻게든 버텨봐라. 여긴 버티는 게 이기 는 거야.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간다는 거니까. 바둑에는 이런 말이 있어. 미생. 완생. 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이 말은 팀장이 된다고 해도 사회 초년생과 다를 바 없는 미생의 삶이 매일같이 반복 된다는 걸 말해준다. 그러면서 너도 나도 다 같은 직장인, 즉 미생으로 서의 동류의식을 공유함으로써 드라마는 위로를 선사한다. ‘직장인 트 렌드’는 직장인이라는 하나의 뭉뚱그려진 집단이 서로에게 보내는 위 안과 위로에서 생겨난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가 피할 수 없고 벗어날 수 없는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고, 그 시스템 위에서 하루하루를 버텨 내는 직장인들의 웃음과 눈물이 있다. 이들 콘텐츠들은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건넨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당신만 아픈 게 아니라는 것. 그러니 우리는 모두 같은 걸 느끼는 직장인이라는 것. 미생이지만 완생을 꿈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