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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역사의 부름 앞에 93 ❚고창전투, 최초의 경찰 단독작전 남한 유일의 발전소로 전 지역의 송전을 도맡아 하는 칠보발전 소를 확보하고 적들이 파괴한 시설을 복구한 차일혁 부대는 1951 년 3월 3일 토요일 본대로 귀대했다. 어둠이 짙게 깔릴 무렵 전주 에 도착한 그들은 어처구니없는 광경에 그들은 울분을 터트려야 했다. 일반 서민주택에는 전기가 채 보급되지 못한 상태에서 유흥 업소에서는 불이 들어와 있었다. 피땀 흘려 되찾은 발전소 덕분에 가능하게 된 전등불을 밝히고 유흥과 향락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전주시내 은하카바레에서 여자들을 끼고 나오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울화가 치민 부하대원 한명이 허공을 향해 공포를 쏘았다. 저럴 수 있단 말인가. 꽃다운 목숨을 바쳐 조국을 위해 싸 우고 있는 이 시각에 향락에 빠진 자도 있다니. 부대원들은 모두 분노하여 그 자를 노려보았다. 칠보작전의 성공적 탈환 이후 18대대에 몇 가지 특전이 주어졌 다. 우선 전북일보 오명순 국장의 추천으로 김만석 기자가 차일혁 부대의 종군기자로 들어왔다. 그는 1917년생으로 몸은 호리호리 가냘퍼 보였지만 매섭고 단아한 눈초리를 갖고 있었다. 외유내강 의 이지적인 인상인 그는 차일혁에게 그동안의 전투기록을 자세 히 취재했다. 그리고 그는 그동안 사살되거나 생포한 공비들의 기 록을 보여 달라고 해서 한참 동안 살펴보곤 했다. 또한, 차일혁은 경감으로는 이례적으로 지프차를 배차 받았다. 처녀출전인 구이작전에서 보신병과 사이드카 한 대를 타고 다른 대원들은 걸어서 행군했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1951년 3월 6일, 전주 서중학교에 지휘소를 설치한 18대대는 다 시 전열을 가다듬고 재출동을 위한 훈련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날 이병선 경감이 부임신고를 하였다. 그는 일제시대 학병출신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