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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 - 했던 당시의 상황은 이현상의 가족조차 이현상 시신의 인수를 거 부할 만큼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차일혁 총경은 당시 군경 지휘관들이 통상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모두 외면했다. 적이기 이 전에 한 인간으로서 이현상의 마지막 가는 길에 정중한 예의를 갖 추고자 섬진강 백사장에서 그의 시신을 화장하여 준 것이다. 차일 혁 총경은 자신의 철모를 벗어 이현상의 뼈를 모아 담고서는 M1 소총으로 곱게 빻아 섬진강에 뿌렸다. 허공을 향해 3발의 권총을 쏘는 조사(弔辭)와 함께…… 당시 이 일을 트집잡아 차일혁 총경을 비꼬던 某 인사에게 차일혁 총경은 화를 내며 이렇게 맞받아친다. “당신도 사람이 아니오? 죽은 뒤에도 빨갱이이고 좌익이란 말입니까? 이제 지리산 공비토벌도 거의 끝나고 있소. 나 역시 많은 공비를 토벌 했지만 그들 역시 같은 민족 아니오? 내 고향 이웃 사람일 수도, 내 친 척일 수도 있지 않소. 당신은 죽어서까지 공비토벌하러 다니겠소?” 차일혁 총경은 생포된 빨치산이 그의 뺨에 침을 뱉으며 귀순거 부를 하였을 때도 그 빨치산을 용서한다. 또한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 가족과 같이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며 진심 으로 귀순을 권유하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심지어 파상풍 으로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 죽어가는 빨치산에게 부하들의 반대를 뿌리치며 본인의 피를 뽑아 수혈을 하고 그렇게 해도 차도가 없자 돼지를 잡아 껍질을 덮어씌우며* 그를 살려내려 애쓴다. 적조차 용서하는 인도주의적 관용과 박애정신을 가졌던 차일혁 총경이 아 니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뛰어넘어 인간을 인간 그 자체로 사랑하는 휴머니즘이 아닐까? * 파상풍에 돼지껍질을 씌우는 것은 차일혁 총경이 중국에 있을 때 보았던 민간요법이다. 차일혁 총경은 정규 의술로는 도저히 치료가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자 중국의 민간요법 까지 동원하며 적을 살려내려 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