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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역사의 부름 앞에 83 이때가 1951년 1월 14일. 선왕봉고지, 시산고지, 남방고지, 장군 봉 8백고지 등 9개 고지를 모두 탈환한 뒤, 발전소에 갇혀 있던 아군부대와 감격적인 악수를 나눴다. 3일간 적에게 포위되어 죽음 을 눈앞에 두어야 했던 아군동료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은 차일혁에게 무엇보다도 기쁜 일이었다. 그러나 적은 아군보다 훨씬 우세한 병력을 가지고 있었고 대부 대로 위장했던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반드시 다시 반격해 올 것이 분명하였다. 적의 반격을 대비하여 그날 밤은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요소요소에 고지 근무를 하도록 병력을 배치해 놓고, 다음 작 전 채비로 차일혁은 이진찬 보급주임을 본국에 특파하였다. 이미 그날 전투로 실탄이 거의 떨어졌기 때문에 그의 임무는 실탄을 가 져오는 것이었다. 차일혁이 예측한 대로 적은 야음을 틈타 또 다시 대부대를 동 원, 내습하였다. 차일혁이 처음 칠보를 진격해 올 적에 대병력의 부대로 가장했기 때문에 적은 나중에 속은 것을 알고 병력을 정비 해 가지고 야밤에 각 고지와 지서, 발전소를 다시 포위하기 시작 하였다. 고지는 10미터 앞, 지서는 30미터 앞, 발전소는 50미터 앞 까지 포위해 들어왔다. 차일혁이 칠보지서에 지휘소를 설치하고 있었는데, 아군이 점령 한 선왕봉고지가 이중 삼중으로 적에게 포위당하고 보급로가 차 단당했다는 연락병의 보고를 받았다. 끝까지 발전소와 고지를 사 수하라는 명령과 함께 예비로 남겨두었던 나머지 실탄을 모두 내 주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적의 포위망은 점차 압축되면서 공격 이 맹렬해지는데 아군은 실탄조차 거의 떨어져 적에게 수류탄을 던지며 쓰러지는 자가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하였다. 절대 위기에 놓인 그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육탄전을 감행한 것이다. 이제 단하 나 남은 희망은 본국으로 실탄을 가지러 간 이진찬 보급주임의 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