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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78 아치는 혹독한 바람과 맞서 달릴 때 뼛속 마디마디가 얼어붙는 듯 하였다. 불과 105명의 병력으로 2천여 명의 적과 부딪친다는 것은 전략상 승산을 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차일혁은 비겁하게 동포를 버리고 후퇴하느니 적과 부딪쳐 깨끗이 돌맹이처럼 부서져 버리 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했다. 적과 함께 싸우다 죽겠다는 각오는 했지만, 한편 적의 포위망을 뚫고 우군 동료들과 양민들을 구출한 후 남한 유일의 칠보발전소를 탈환하여 원상복귀시키겠다는 결의 만은 버리지 않았다. 혹한의 한밤중 거친 산길을 달리던 자동차 한 대가 금구에서 고 장이 나서 그 차에 탔던 30여 명은 내려놓고 75명만이 이튿날 아 침 5시경 태인에 도착했다. 태인지서의 상황을 청취한 바에 의하 면 적은 칠보, 옹동 방면을 완전히 포위하고 시시각각으로 태인을 위협하고 있으며 이미 포위당한 우군은 전멸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75 대 2000. 고금의 예가 없는 전투비율이었다. 더구나 적은 지 형상 유리하고 견고한 지형을 확보하고 있고 아군보다 우수한 장 비를 갖추고 있었다. 차일혁이 아무리 작전계획을 구상해 보아도 어떤 크나큰 기적이 생기지 않는 한 도저히 승리란 상상할 수 없 는 일이었다. 그러나 차일혁은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고 오전 6시 차를 몰아 옹동으로 향하였다. 옹동에 거의 이르니 칠보를 포위하 고 있는 적의 무리가 희미하게 보였다. 칠보와 지척지간인 옹동에 다다랐을 때는 긴 겨울밤이 샐 무렵이었다. “이제 구부러진 길모퉁이 하나만 지나면 적과 직면한다.” 차일 혁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앞에 보이는 길모퉁이가 무슨 암시를 주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 차를 정지시켜야지.” 차일혁은 급커브의 모퉁이길을 마주하자 좋은 작전이 번개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