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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76 불타는 증오심으로 빨치산 토벌에 큰 전과를 여러 차례 기록했지 만 정읍군 옹동면 상두산 소튼재 전투에서 크게 패해 300여명의 대원 중 3분의 1을 한꺼번에 잃어버렸다. 경비사령부의 특명으로 17대대와 18대대는 통합되었다. 당시 17대대는 18대대보다 인원과 장비가 우수하였는데, 이를 인수한 18대대는 350여명의 대원을 새 로이 확보하여 새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17대대는 정읍 칠보발전소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 책 임자로 제2중대장 이원배 경위를 파견하였다. 이원배 경위는 황해 도 출신으로 대동아전쟁 때 실전 경험이 많은 믿음직한 군인이었 다. 얼굴은 여자처럼 갸름하고 곱상하게 생겼고 키가 작았으나, 구이작전에서 가장 용감히 싸운 유능한 지휘관이었다. 이제 겨우 결혼 3개월이 지난 신혼의 이 경위를 칠보로 보내는 것이 차일혁 은 내심 마음에 걸렸지만, 책임감과 통솔력을 믿고 그를 보내기로 하였다. 1951년 1월 13일 본국 경비사령부에 긴급 출두명령이 내려졌다. 김가전 전북도지사, 김의택 도경국장, 정읍출신 국회의원 김택출, 스프링스 미 고문관, 경비사령관, 이 某 보안과장, 이병희 사찰과 장 등이 침울하고 초조한 기색으로 한 자리에 모여 앉았다. 현재 회문산에는 적 도당사령부가, 쌍치면 가마골에는 적 연합 사령부가 자리잡고 있으며, 정읍군 칠보면 사산리에 소재하고 있 는 칠보발전소가 적에 의하여 완전히 포위되었다고 했다. 이원배 경위가 파견된 아군부대와 칠보지서원과 향방대원35) 및 35) 향토방위대원의 준말. 의용대원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을 중심으로 각 경찰거점(예: 시골지서)을 지키기 위하여 주민들의 희망을 받아 자진해서 지서에 등록하여 공비토벌 등 치안유지에 동원되었다. 복장은 전투경찰대원과 비슷하였으나 정식채용절차를 밟은 것도 아니고 월급도 없었다. 일종의 자경대를 말한다. 계급은 없었으나 의용대장, 부대장 등 직책은 있었다. 반면 전투경찰은 사단장, 도지사 등이 구성원인 치안대책위원회에서 임명하며 순경, 경사, 경위, 경감 등의 정식경찰계급을 부여하였다. 월급이 나왔으며, 정규경찰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