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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 를 건립했다.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1000년 이 상의 세월로도 부족하다.” 어이 없이 숭례문이 불타 없어지는 것을 생생히 보았던 오늘의 우리에게 차일혁 총경이 남긴 위의 말은 여전히 살아 있는 혼으로 가슴 속에 스며든다. 차일혁 총경은 칠보발전소 탈환, 고창 작전, 정읍 전투 등 혁혁 한 전과를 올리고 있던 당대 최고의 토벌대장으로 빨치산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특히 칠보발전소 탈환 작전은 75 대 2,000이 라는 열세를 극복하고 승리한 전투였고, 난공불락이었던 가마골 탈환은 사실상 빨치산 토벌작전의 마감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이 러한 전과는 차일혁 총경의 뛰어난 지략과 솔선수범을 통한 철저 한 부대 사기 관리 및 전투력 유지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그러 나 무엇보다도 작전 중 민폐를 엄금한 철저한 원칙주의와 수복지 역 부역자와 빨치산 포로에 대한 인도주의적 관용을 실천한 것이 야말로 뛰어난 지휘관으로서의 차일혁 총경의 진가였다. 그러나 사실 차일혁 총경은 토벌대장 시절 온정주의자라는 비 난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는 동족상잔이라는 극한 이념 대립의 광풍이 몰아칠 때였다. 보도연맹 사건이라는 끔찍한 학살이 자행 되었고, 역도(逆徒)에 협력하였다는 이유로 6․25 전쟁이 발발한 후 그 해 말까지 6개월동안 군법회의에서만 무려 1,902건의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 그렇게 온정이라는 단어가 사치(奢侈)에 불과 * 육군본부, 법무50년사(1946-1996), 1996, 173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