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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72 을 부대 유치장에 집어넣었다. 그들은 다시는 부대를 이탈하지 않 겠다며 선처를 빌었지만 그들을 유치장에 넣어 두고 모른 체했다. 일주일 후 연병장에 전 대원들을 집결시키고 유치장에 있던 대원 들을 데려오게 했다. “여러분들은 경찰서에서 행정업무를 하는 경찰이 아니라 빨치 산 토벌을 하는 전투경찰이다. 일반 경찰들은 전투경찰을 하찮은 것이라 생각하고 전투경찰이 되기를 꺼리고, 설사 전투경찰이 된 다 해도 하루 속히 일반 경찰관서로 빠져 나가기만을 기다린다. 나는 얼마 되지 않은 기간이지만 함께 훈련하면서 하루 속히 공비 를 토벌하여 치안을 확보하기 위해 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 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공비토벌을 하다가 피를 뿌리고 쓰러진 다 해도 전투경찰을 버리지는 않겠다. 제군들 가운데 죽음이 두려 워 전투경찰을 그만두려는 자가 있다면 내가 용서치 않겠다. 지금 제군들 앞에 비겁하게 도망쳤던 사람이 있다. 이번은 처음인 만큼 용서하겠다. 그러나 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공비들을 토벌하기 전에 탈영병들을 먼저 죽여 버리겠다.” 자기 혼자서 살겠다고 비겁하게 전투경찰을 벗어나겠다고 도망 친 대원이 있는가 하면 특공대로 자원했다 부상을 입고 병상에 누 워 있는 대원들도 있었다. 구이작전에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용감히 나서 중화기 부대에 차일혁의 명령을 전달하려다가 다리에 총을 맞아 부상을 입은 이 봉구는 하반신이 불구가 돼 버렸다. 그는 총상을 입고도 임무를 완수한 훌륭한 전투경찰이었다. 해를 넘긴 1951년 1월 2일 예수병원을 찾아간 차일혁의 마음은 착잡했다. 전북 김제 황산이 고향인 이봉구의 모친은 그를 보더니 멱살을 움켜쥐었다. “다들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는데, 젊은 놈이 병신이 돼서 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