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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역사의 부름 앞에 71 이다.” 아군에 대한 전열도 새로이 가다듬어야 했다. 우선 전투를 직접 해보아야 그 사람이 전투원으로 자격이 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 는 것이다. 아무리 체구가 크고 용감하게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 도 실제 전투에서는 뒷걸음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소에는 얌 전한 샌님 같은 인상을 풍길지라도 일단 전투에 임하면 용맹성을 떨치는 사람이 있는데, 구이작전에서도 그러했다. 구이면 첫 정찰시 따라갔던 샌님 허민 순경은 빨치산이 해놓은 밥솥을 들고 왔다가 몹시 꾸지람을 들었다. 빨치산이 그 안에 독 약이라도 뿌려 놓았으면 어쩌겠느냐고 나무랐으나 차일혁은 마음 속으로는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저렇게 밥을 들고 왔을까 하는 생 각마저 들었다. 한편으로 저렇게 연약해 보이는 대원이 어떻게 전 투를 할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교동 다릿골전투에서 적의 기습을 받고 차일혁 부 대가 고전하고 있을 때 적의 고지에 선두로 기어가 수류탄을 던져 적의 예봉을 꺾어 놓았다는 사실을 알고 부대원 모두가 놀랐다. 얌전한 샌님 같은 그가 어떻게 그런 과감한 행동을 할 수 있었는 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김근수, 이진찬 경위는 전투원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김근수 경위는 사무일을 보도록 조치했고, 이진찬 경위는 행정보 급관계 일을 맡게 했다. 반면 유가족 자녀들은 비록 나이는 어렸 지만 앞장서서 적들과 싸워 많은 전과를 올렸다. 급히 만들어진 전투경찰부대인지라 많은 탈영병이 생겼다. 전투 경찰은 특별히 탈영병을 규제할 방법이 없었다. 차일혁은 새로이 사람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믿을 만한 대원들을 시켜 부 대로 돌아오지 않는 대원들을 찾아 나서게 했다. 가까스로 반 정 도의 대원들이 다시 돌아왔다. 차일혁은 강제로 끌다시피 대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