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page

2부. 역사의 부름 앞에 69 용서해주기로 했다. 그는 후에 사회안전법이 제정되자 다른 우익 인사들을 살상한 건 때문에 누군가의 신고로 수감되어 형을 살 았다. 차일혁은 구이면 첫 전투에서부터 이념을 넘어선 관용과 포용의 모습 을 보였다. 사람이 보일 수 있는 용서와 관용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나를 뒤에서 욕하고 다니거나, 나에게 금전적 손해를 입히거나, 내가 하 는 일을 방해한다거나 아니면 내 돈을 훔쳐가는 것처럼 나에게 손해를 끼치고 피해를 가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일을 당 하였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자신에게 그런 일을 한 사람들을 벌주고 싶 어 한다. 그런데 만약 상대방이 용서를 구하여 온다면 과연 우리가 베 풀 수 있는 관용의 한계와 마지노선은 어디까지일까? 이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일 것인데 어떤 사람은 말로 비 방하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행동으로 나서면 용서할 수 없다고 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금전적 손해까지는 괜찮지만 신체적 위해가 가해 지면 용서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사람 들에게 당신을 죽이려고 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그렇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장발장이 자신을 재워 준 교 회의 물건을 훔쳐 달아나다가 경찰에 잡혀오자 신부님은 훔친 것이 아 니고 자신이 준 것이라고 장발장을 감싸주는 관용을 보인다. 그런데 이 신부님도 만약 장발장이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라면 그렇게 선뜻 용서를 해줄 수 있었을까? 글쎄, 이에 대한 대답은 알 수 없는 노릇이지 만 일반적인 사람들의 경우 자신을 죽이려고 했던 사람까지 용서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차일혁 대장은 자기를 죽이려 한 사람까지 용서하는, 정말 필부로서 는 결코 보이기 힘든 위대한 포용과 관용의 정신을 보여 주었고, 이러 한 점은 그가 용맹하게 공비를 토벌하는 무장이기에 앞서 얼마나 인간 에 대한 사랑이 깊은 휴머니스트였는지를 잘 알게 하는 대목이라고 할 것이다.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들도 범죄를 소탕하고 불의에 맞서 싸우 는 정의의 사도이기 이전에 가슴깊이 인류를 사랑하고 생명을 경외하 는 따뜻한 인간애를 먼저 가슴에 품어야 함을 말없이 강변하고 있는 것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