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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역사의 부름 앞에 67 “우리들도 인공시절에 살기 위해서 부역을 했지만 그때도 많은 사람을 살려주기도 했었습니다. 처벌해야 한다면 우리부터 처벌해 주십시오. 더 이상 무고한 살상만은 없게 해주십시오. 사실 피난 가지 못한 사람 중에 인민군에게 밥 한번 안 해주고 노래 한번 따 라 부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선 모두 협조해야만 했었습니다.” 사돈은 부역한 모든 사람들을 자수시킬 테니 그들의 죄를 용서 해 주라고 신신당부했다. 철저한 빨갱이가 아닌 주민들은 혹 그들 이 좌익에 동조하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 편으로 흡수해야 한다는 것이 차일혁의 생각이기도 했다. 차일혁은 사돈에게 인명살상은 피하겠다고 약속했다. 우선 구이 면에서 생포한 5명의 빨치산을 죽이지 않고 귀순자로 처리해 취 사반에 배속시켰다. 사실 그들은 도망가지도 않았고 철저한 빨치 산이라기보다는 단순한 빨치산에 가까웠고 바로 구이면의 주민들 이었다. 1950년 12월 29일, 18대대는 항가리에 본부를 설치하고 계속해 서 장팔리, 정자리를 향해 진격했다. 적은 퇴각하여 정읍군 산내 면 방면으로 도주하고 18대대는 이곳의 치안을 회복하였다. 생명 의 은인이기도 한 사돈의 간곡한 부탁도 있고 해서 차일혁은 공포 에 질려 있는 항가리, 원기리, 광곡리 주민들을 모아놓고 즉석연 설을 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구이면에서 괴뢰군의 총에 맞은 적도 있고 또 다락에 숨어 치료도 받고 목숨을 건지기도 했습니다. 또 나와 같 은 유격대원 15명이 옹골연에서 생포되어 죽음을 당하기도 했습 니다. 이곳은 수복된 뒤 처녀출전이기도 합니다만, 나와의 인연이 특별한 곳입니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쳐 여 러분들을 대하지는 않겠습니다. 안성선 전주시 부시장을 사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