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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 말한다. “지금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급박한 상황에 있지만, 빨치산과 우 리 대원들이 관객으로서 하나되어 모여있는 감격적인 순간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이 공연은 이념과 사상을 넘어선 뜨거운 민족애를 보여주는 뜻깊고 역사적인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로 인해 순간의 혼란은 숙연함으로 정돈되었고 공연이 계속 되면서 잠깐이지만 고난에 찬 민족의 희로애락이 장내를 가득 채 웠다. 차일혁 총경은 이후 깊은 문화적 소양으로 영화 『애정산맥』 의 촬영에도 관여한다. 『애정산맥』은 차일혁 총경을 모델로 한 작품이었다. 당시 차일혁 총경은 영화제작 관계자들도 놀랄 만큼 예술적인 면모를 보였는데 『애정산맥』은 1953년 전국 극장가에 서 1위를 석권하였다. 전옥과의 인연 탓이었을까? 아무래도 좋다. 그러나 다음의 일화를 볼 때 원래 차일혁 총경의 피 속에는 뜨 거운 문화적 소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차일혁 총경은 빨치산 들의 은신처가 될 수 있으니 지리산 화엄사를 불태우라는 상부의 작전명령을 거부한다. 천년고찰을 지켜내야 한다는 강한 소신을 갖고 각황전의 문짝을 불태우는 것으로 화엄사를 지켜낸 것이다. 이 일로 인해 그는 특별명령불이행이라는 이유로 징계처분을 받 는다. 그러나 이후에도 차일혁 총경은 계속하여 천은사, 백양사, 쌍계사, 금산사, 선운사 등 명찰들을 구해낸다. 약간의 시간이 지 난 1958년 조계종 초대 종정이었던 효봉스님은 차일혁 총경에게 감사장을 수여하였다. 많은 세월이 지난 1998년 5월 화엄사는 경 내에 시인 고은이 비문을 작성하여 차일혁 총경을 기리는 공적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