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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역사의 부름 앞에 61 장 옆에 있는 국민학교에 대원들을 쉬게 하였다. 항가리 지서주임에 의하면, 적은 정읍관내의 순창, 복흥, 쌍치와 구이 등 일부 미수복 지구를 점거하여 도당사령부를 회문산에 세 우고, 인근 지역인 전주, 완주, 임실 등에 각 시, 군당과 면당을 설 치하여 기포병단, 번개병단의 명칭을 가진 우수한 병력들을 주변 에 대기시켜 놓고 있었다. 장팔리가 적의 본거지로 번개중대가 주 둔하고 있으며, 아직 항가리도 밤에는 인민공화국으로 변해 항상 적의 습격을 받고 있었다. 적은 산에 들어가기 전에 보유하고 있던 우수한 장비와 인원을 그대로 이끌고 산 속에 들어갔다. 무기와 훈련이 부족한 차일혁 부대로서는 무시할 수 없는 대적이었다. 그러나 내심 이를 분쇄하 고 무찌를 어떤 오기 같은 것이 솟구쳤다. 차일혁은 전향자로부터 적의 소굴에 대한 정보를 입 수하고 김진구 대장으로 하여 금 실전경험이 많은 박기락, 김판조, 이기린 등 소대장급 이상의 대원 20명으로 척후 정찰대를 조직하여 적이 주둔 한 일대에 수색을 내보냈다. 수색대는 매서운 눈바람 속을 뚫고 돌진하여 첫 전과로 적 의 보초 2명을 사살하고 5명 의 빨치산을 생포하여 왔다. 수색대의 보고 등을 종합해 볼 때 병력이 예상 외로 많아 차일혁은 정면공격보다는 게 릴라전으로 기습하지 않으면 ▲구이전투 작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