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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역사의 부름 앞에 55 생들이 전주로 피난하여 공부를 하고 있었다. 차일혁은 학교 측에 부탁하여 그들에게 전투경찰에 들어오도록 권유했다. 한때 그 곳 학생이었던 이영구가 많은 사람들을 설득했다. “너희들도 어차피 군대를 갔다 와야 하지 않겠느냐? 군에 입대 하여 일선으로 가느니 우선 후방에서 공비토벌부터 해야 한다. 우 리가 그 일에 나서자.” 주저하는 사람들에게는 “학사출신들은 전투경험이 부족하므로 위생병으로 배속시켜 준다더라.”며 얼러대기도 했다. 그곳에서 약 40명의 지원자가 나섰다. 공을 세운 이영구를 경사로 특채하여 학 사출신들을 통솔하게 했다. 또 전란으로 가족이 학살당한 청년들 이 40여명 지원해 왔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들이었다. 그들은 전주 서중학교에 가마니를 깔고 주먹밥을 먹으 며 훈련에 들어갔다. 12월 15일. 김가전 전북지사, 이우식 법원장 등의 지방유지들이 ▲18대대를 창설하고 기간요원들과 함께. 가운데 서있는 사람이 차일혁 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