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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 경찰의 혼 차일혁 총경 일대기 52 그런데 갑자기 우리들을 석방시켜준다며 팬티바람으로 운동장에 집합시켜 놓고 형무소장이란 자가 한바탕 연설을 하더군요.” “우리는 길이 막혀서 북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산으로 들어간다. 여러분들을 교화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절대 미제와 교류하지 말라. 미제는 우리를 압제했던 일본 놈들을 앞장 세워 우리나라로 진격하고 있다. 우리가 잠시 후에 다시 이곳을 점령할테니 여러분은 미제에 협력하지 말고 기다려라.” “한바탕 연설을 한 형무소장은 재소자들을 팬티바람으로 석방 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옷을 챙기러 갔다가 인민군에게 사살당 했습니다. 우리는 옷도 걸치지 않은 채 형무소를 벗어나 민가에서 옷을 얻어 입고 전주로 들어왔습니다.” 다행히 살아온 동지들은 그동안 겪은 고초에 이를 갈면서도, 후 퇴하면서 재소자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준 형무소장에 대해 의아 해 하고 있었다. 그들은 13명의 전우가 죽어간 정치보위부가 있던 신흥학교로 갔다. 이미 시체를 찾을 수 없었다. 모두의 눈에서 주먹만한 눈물 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흐린 시야 속에 우쭐거리며 노래 부르던 박세종의 모습이 떠올랐다. “해도 하나, 달도 하나, 사랑도 하나. 이 나라에 바친 목숨 그도 하나이련만, 하물며 조국이 둘이 있을까 보냐.” 박세종의 시체는 눈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고, 노래 부르던 모 습만 한가득 눈 안에 담겨 떠나지 않았다. 세종이는 겨우 열일곱 살, 유격대원 중 가장 막내둥이, 귀염둥이가 아니었던가. 차일혁은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나라에 바친 목숨 그도 하나.” 눈물 콧물 훌쩍이며 그의 노래를 입안으로 불러 보았다. “하물며 조국이 둘 이 있을까 보냐.” 다른 대원들도 함께 읊조리고 있었다. 그들은 유격대로 갑자기 모여들었기에 이름도 신분도 출생지도